일리一理, 공간空間의 말/일리一理, 공간史

일리 로스터스, 3주년 단상

一理ROASTERS 2021. 12. 1. 14:00

왼쪽은 이 가게의 시작점이 되었던, 김영민 선생님의 <진리/일리/무리>라는 책입니다. 오른쪽은 제 로망을 모두 담아낸 故다치바나 다카시님의 고양이 서재를 소개하는 책입니다. 제 꿈도 그의 꿈과 같습니다. 결국 사업은 길게 내다봐야하는 거니까요. 두고 봅시다.

"일리의 해석학은 철학함 속에 독단을 원천적으로 경계한다. 결국 이 복잡성에 대한 경의야말로 철학을 만만하게 보지 못하게 만든다. 개방성, 학제성, 역사성은 ‘일리一理’의 해석학의 바탕에 있다. 피부 너머의 복잡성을 느낄 수 있기에 문학은 필연적인 것이다. 삶의 복잡성에 참여하는 수많은 일리들의 역사를 조망하는 것이 철학이라면 철학은 마냥 말장난일 수 없다. 철학은 인간의 문화와 학문적 관점들이 나눠놓은 온갖 층위의 복잡성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삶과 세상의 원천적 복잡성과, 이와 유관한 층위 구분을 통한 일리들의 제시야말로 철학적 소양의 핵심이다."

 

"모든 지식은 삶이 세계 속에 있는 ‘인간’을 ‘되어가는 인간’으로서 스스로의 의미를 확장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종교와 철학과 과학이 자기성숙을 바탕으로 객관적, 절대적, 독선적 지식의 추구를 유예하고 서로 어울린다. 학문이 성숙해가면서 겸손과 관용을 통해 그동안 간과해온 주변을 민감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임으로 자기한계와 공조의 미학으로 나아간다. 이 공조적 미학은 개방성을 전제로 하는 대화의 아름다움에 생명을 건다."

 

"세상을 복잡성이라 읽고 그 세상을 ‘일리一理’의 해석학을 통해서 이해한다."

 

2018년 12월 1일, 일리가 정식오픈한 날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책의 제목 <집중과 영혼>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려 했던 시도는 물거품이 됐고, 적어도 소소하게 하나의 패턴과 하나의 흔적은 만들어나가자는 의미에서 '일리一理'라는 이름으로 확정했지요. 그럼에도 가게 이름에 이런저런 무게감을 주고 싶었습니다. 일리는 하나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복잡성과 연관되며, 굉장히 동적인 개념입니다. 인간의 문화+학문적 관점이 얽힌 복잡함과도 연관됩니다. 이런 복잡성 속에서의 단순함을 추출하는 것이 아닌 복잡성과 함께 노니는 개념인 것입니다. 그렇게 무게를 주었지요.

간판 디자인도 주변의 색감을 고려해 디자인도 소소하게 직접해보고, 외주도 맡기고,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겪어가며 우여곡절 끝에 오픈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나버렸네요. 운영 중에도 SNS에 대한 감각도 전혀 없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이분법으로 나누던 초보 자영업자가 3년이란 기간을 버텼네요. 다 여러분의 관심 덕입니다. 그렇기에 계속 나아갈 겁니다.

 

 

1. 많은 것이 바뀐 현실, 찾아가는 서비스의 시작

제 작업실이 생겼습니다. 바테이블 안쪽...이기 때문에 작업실이라고 하긴 그렇지요. 작업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하드웨어도 슬슬 갖출 예정입니다.

확실히 2-3년 사이에 시대가 급작스레 바뀌어감을 느낍니다. 코로나... 메르스 때처럼 별 일 없이 끝날 줄 알았거든요. 2019년 말부터 시작된 전세계적 바이러스가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고 있으니까요. 코로나 직격으로 인해 운영을 해야할지 말아야할지부터 어떤 방향의 변화를 꾀해야 하는지에 대해 갈팡질팡할 때도 있었고, 새로운 방향성 차원에서도 갈팡질팡했었지요. 그럴 때일수록 가게의 정체성을 '확장'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구상했지요.

일리에는 꾸준히 책이 들어옵니다. 제 깜냥껏 발굴한 책들이지요. 한때 사서가 꿈이었습니다. 이런 사서의 이상향(?)을 구현하는 방향 즉, 아는 책 내에서 소개하고, 엮어주는 역할인 것이죠. 아, 가장 중요한 역할은요. '발굴'이라는 차원도 있습니다. 잊혀질 뻔한 좋은 저자, 좋은 작품을 골라오고 읽고 하나의 박물관처럼 흔적을 남기는 일이지요. 책이라는 물체에 담긴 시각디자인, 읽기, 쓰기의 가치를 전면에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쓰기 읽기를 체험하는 곳으로의 오프라인과 그 의의를 나름의 글을 직조하면서 온라인으로 구현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즉, 스스로가 꾸준히 글을 내는, 매거진이 되자는 것이죠. 기다리는 존재가 아닌, 찾아가는 존재가 되자는 '동적' 개념으로의 변화입니다. 

 

 

2. 공간의 변화

손님을 위한 공간입니다. 독특한 책으로 개성넘치는 독서 모임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대관이라고 해봤자, 결국 제가 관리를 해야 해서, 대관보다는 모임 예약 받습니다. 연말 모임도 환영입니다. 아, 스피커도 대량으로 추가했습니다. 창업을 시작할 때는 전형 상상하지 못했던 패시브 시스템과의 만남이지요.

나무와인 심현규 대표님이 만든 작품을 들여 놓았습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집니다. 원목 가구의 매력은 마음을 울리다는 데 있는 거 같습니다. 마련하고 많이 놀랐습니다. 앉기만 해도, 마음이 안정되는 효과가 있더군요. 개인 작업으로도, 모임용으로도 좋습니다. 앞에는 데스크 오거나이저가 배치되어 있어서, 메모든, 잡감이든 쓸 수 있거든요. 그리고 몇몇 분들을 위한 독서대도 있어요. 

그리고 스피커 시스템을 마련했습니다. 2020년부터 소소하게 시작하다가, 어찌하다 보니 웅장해졌습니다. 블루투스 모듈도 업그레이드했습니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소리가 표현됩니다. 연말 목표 중 하나가, 어떤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삼성의 더 프레임을 마련하려다가, 스피커가 웅장해짐에 따라 그 야망은 포기하게 됐습니다. 

 

3. 단상 총정리-느낌적인 느낌

그 간 인터넷이라는 매체에 거부감을 가졌습니다만, 이제는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게 됐습니다. 익숙한 시대의 감각에 맞춰나가는 것이 사업의 기본임을 배웠습니다.

운영 3년차인, 2021년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요. 특히 잊지 못할 한해입니다. 이런 저런 구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게 된 해이니까요. 늘 직장인으로, 손놈으로 살다가, 자영업자가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한 고비를 넘겼다는 어엿한 4년차 자영업자가 됐습니다. 자영업자 시선에서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특히 극도의 친절함이 무엇인가, 소소한 커피란 무엇인가, 커피의 맛을 극대화시킨다라는 표현보다는 내 패턴에 맞는 커피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브루잉 커피라는 범위 안에서 손님들에게 익숙한 커피에 맞춰 대접해드리는 곳입니다. 그리고 커피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웬만한 건 다 기억하는 데, 기록하지 않으니 망각이 빠를 수밖에요.

사실 자영업자가 되어서 비로소 준비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리는 그 자리에 있지만, 흐른 세월만큼 고이지 않고 발전해나가겠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씀 뿐입니다. 또다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