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一理-읽기/책 그리고 패턴

읽는 노동, 읽는 실험 2/ 책, 구식과 첨단 사이

一理ROASTERS 2022. 2. 4. 15:06

오늘은 별 말이 없습니다. 책이 다 말합니다. 저의 문제의식에서 더 진보한 책이기에, 제가 딱히 적을 것은 없어보여서, 읽는 노동으로 그리고 읽는 실험으로 대체합니다. 시리즈로 나아갈 예정입니다.

-책은 실용적으로도, 상품으로서도 구리다 꽤-

"이제는 책도 수지 타산이 맞아야 하며, 그것도 아주 단기간에 수익을 내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공익이라는 가치도 이제는 멀어졌다."(20)
"책은 단순한 상품이 아닌 특수한 공예품으로 한결같은 노력이 필요한 대상으로 간주됐었다. 따라서 당연히 저자들을 지원하고 양성해야 하며, 가치 있는 사상이 세상에 나오려면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책 문화에서는 문학적 천재가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제대로 평가받는 데다 출판사의 전통과 결을 같이하면서 '정통 고전 목록'에 오르려면 오랜 세월이 흘러야만 했다." (21)
"출판사들은 가면 갈수록 새로운 책들을 더 많이 내놓아야 하는 압박에 시달린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저자들의 책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판매되기란 어려우며, 출판사들은 전통의 반열에 올라선 책 즉, 재고 도서 목록을 보유하지 않는다."(22)
요즘은 특정한 시점에 돈이 된다 싶은 책을 기획해서 만들어낸다. 다른 매체의 성공에 편승해 시너지 효과의 덕을 보거나 현대 유명 인사들의 광고를 받는다는가 하는 추세가 됐다. ...글자 수는 줄어들고, 그래픽은 더욱 화려해지고 깊은 생각이나 심각한 사상 따위는 없다. 더구나 운이 좋게도 이런 책이 출판되더라도, 한두 달 만에 뜨지 못하면 퇴출된다.(24)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책이라는 물건이다. 책의 위상이 이렇게 변하게 된 원인은 일정 정도 책의 외형적 한계에서 찾을 수 있다. 전 세계 어디나 할 것 없이 책을 인쇄하고 제본하고 저장하는 방식이 시대착오적이다. 책 문화를 지속시키는 데 써야 할 시간과 자원이 책이라는 물건을 만드는 과정에서 전부 낭비되고 있으니 말이다. 책의 본질인 사상을 갈고닦는 것이 아니라 책을 만들 나무만 정성 들여 가꾸는 꼴이다. '인쇄 책'을 찍어내는 일에만 집중하다 보니 정작 책을 쓰고 출판하는 본래의 의미는 안중에도 없다. 이처럼 현대 출판 산업의 문제는 변하고 있는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변하고 있는 물건에서 비롯됐다."(25)
"요즘 책을 보면 하나의 물건으로서 충분히 팔릴 만한 상품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책 내용이 결정되는 것 같다. 출판사들은 책의 겉표지와 겉표지에 도배돼 있는 자화자찬용 추천사에만 온 신경을 기울인다....책은 출판계가 사상이 아닌 물건을 파는 데 열을 올리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25)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는 지금까지 9백만 부가 넘게 팔렸다. ... 사실 많은 사람들이 스티븐 호킹을 알게 된 계기는 그의 책을 읽어서가 아니라 그가 <심슨 가족>에 출현했기 때문이다."(30)
오늘날 책은 주목받는 멀티미디어 제품들을 교차 광고하기 위한 수단이 돼버렸다. 요즘의 책들은 세계적인 기업들의 존재 방식인 시너지 효과에 기여할 목적으로 상표가 붙어 제조되는 일종의 상품이다.(43)
책에 담긴 생각이나 사상이 나름의 생명력을 이어간다 하더라도 이 책의 물리적 형태는 잊혀지게 될 것이다. ..책에 들어 있는 낱말을 널리 퍼트리고 텍스트의 매력에 빠져들게 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책에 들어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책의 내용만 괜찮다면 책은 계속해서 인간인 우리의 정체성을 말해줄 것이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밝혀줄 것이다. (44)
백과 사전과 학술 논문, 교과서 등이 인쇄 영역에서 급속하게 빠져나가고 있다.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정보를 얻기 위해 가정 먼저 책을 찾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인터넷을 통해 그때 그때 원하는 정보나 지식을 바로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칙칙한 인쇄 책을 들춰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79)


책은 구립니다. 상품성도 구립니다. 컴퓨터와 유관한 우리에게 무관함을 안겨다 줍니다. 딱히 부연설명 안하겠습니다. 본문만 봐도 충분하니까요2.

-책은 사실 첨단일수도?!-

그렇다면 왜 여전히 수고스럽게 굳이 책을 쓰고 출판할까? 그 이유는 지금 시기야말로 위기이자 또 다른 기회이기 때문이다. ...책이 거듭나려면 제일 먼저 책의 죽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중욯나 것은 '책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책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책이 죽었다'는 말에 책을 측은하게 여겨서는 안된다. 오히려 책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찬미하고 새롭게 맞이하게 된 기회들을 기꺼이 활용해야 한다.(43)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읽고 쓰며 잠시 생각할 여유를 갖거나 깊은 생각에 빠져든다. 또한 수세기 동안 인쇄 책이 해왔던 방식으로 책 속에 들어 있는 낱말과 이미지들을 통해 인간 존재의 구조를 파헤치려고 애쓰고 있다. 따라서 책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이 가장 왕성하게 표출되고 있고 가장 활발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책 문화'의 핵심을 물리적 형태가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겨 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종래의 출판 방식과 판매 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방법과 공간들을 찾아봐야 한다(45)
책은 '기술'이다. 언어와 읽기 그리고 쓰기도 기술인데 우리는 그런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 ...더군다나 모든 기술은 체계이다. 다시 말하면 사물이나 사물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해당 사물에 대한 개념'이 합쳐진 것이 바로 기술이다. 따라서 책이라는 '사물은 프랑스 이론가들이 설명했듯이 기술 체계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책은 그저 종이에 잉크로 인쇄된 글자와 매력적인 표지가 전부인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책은 사상과 문화적 관습 그리고 산업 과정까지 결합된 존재이다. 모든 책은 본명 비슷한 물질적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각각 존재하는 이유와 토양이 되는 문화는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책의 기술에는 인쇄술과 똑같은 기술이 들어 있을 수 있다. 인쇄술은 잉크를 이용해 종이에 이미지를 찍는 과정이다. 따라서 책을 정의할 때, 우리는 '이노쇄 기술'보다는 '출판 기술'에 더욱 초점을 맞춰야 한다. 책은 단순히 종이에 무언가를 인쇄한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존재이기 때문이다.(53)
책을 만드는 기술에는 세 가지 특이한 구성 요소가 들어 있다. 첫째 요소는 책의 내용, 즉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사상'이다. ... 책의 두 번째 구성 요소는 '출판'이다. ...출판사들은 책을 텍스트와 사물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정의내릴 때 세 가지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먼저 텍스트와 사물로서의 책을 만들 때의 역할이다. 텍스트는 출판기획자들이 도서 구입 회의에서 신인 저자와 이름이 알려진 저자들의 책을 소개함으로써 입수되거나 마케팅 부서에서 틈새시장을 찾아내 거기에 맞는 책을 의뢰해서 만들어진다. 어느 경우건 간에 텍스트로서의 책은 해당 출판사가 만족할 만한 형태가 나올 때까지 편집자들에 의해 다듬어진다. 동시에 사물로서의 책도 제 모습을 갖춘다. 디자이너들은 표지 디자인의 초안을 잡고 적당한 조판과 쪽 모양을 찾아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면서 민적 요소들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고민한다.
출판사의 두 번째 역할은 책을 마케팅, 또는 판매할 때 발휘된다. 책은 일단 만들어지면 팔려야 한다. 출판 산업의 마케팅 과정에서 마케팅 담당자들은 책의 판형과 인쇄 부수를 결정한다. 그러면 홍보 부서에서는 곧 선보일 책의 내용을 알리고 '머지않아' 출간될 다른 많은 책들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독자들의 눈에 띌 만한 홍보 전략을 세운다. 외판원들은 정작 자신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책들을, 요즘 어떤 책들이 잘 팔리는지 가늠하기 위해 애쓰고 이쓴ㄴ 서점들을 상대로 후한 판매 조건이나 반품 정책을 내걸고 본격적인 판매 공세에 돌입한다. 일단 책이 출판사와 편집자의 검열을 통과해 마케팅 과정을 거치고 나면 보급 창고에서 시작해 교외 지역 쇼핑몰의 대 형 서점에서 끝나는 경로로 진입한다. (55)
책을 결정짓는 마지막 구성 요소는 책이라는 사물의 본질이다. 내용이나 텍스트가 다른 미디어 형태에 맞게 변경되거나 재구성될지언정 인쇄 책이라는 물질적 특성은 고스란히 남는다. 모든 책은 그 나름의 무게와 질감, 감촉 그리고 냄새까지 지니고 있는데, 이런 것들은 그 자체로서 문화적 가치를 띤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종종 책이 전달하려는 사상만큼 책이라는 사물에도 많은 매력을 느낀다. 그래서 각자의 책장에는 책장 주인의 정체성을 가늠해주는 기준이 된다. ...어떤 이들은 장서표나 주석을 이용하거나 책장의 모서리를 접어서 책의 이런 능력에 대해 감사의 표시를 하는 동시에 촉각적인 방식으로 책이라는 사물과 교감한다. (60)

 

-책과 상호작용하는 '과정' 그 자체가 첨단-

책 문화?

'책 문화'는 책을 특징짓는 그 무엇이다. 책은 인쇄 문화의 산물이지만 실질적으로 책이 인쇄 문화보다 한층 더 정교한 세계관을 끌어왔다. ...대중들이 다양한 사상을 접하고 깊이 있는 사고를 하며 다른 이들의 생각이나 의견을 배우고 익히고 자기만의 고유한 생각을 창조하게 하는 것, 즉 공적이 대화와 담론의 대중화 같은 이상적인 목표에 책의 본질이 있다. 책 문화의 핵심은 쓰고 읽고 편집해서 결국 '사상'을 출판하는 과정을 통해 가치 있고 인간적인 대화를 지속시키는 것이다. ...책 문화에는 책 자체만 포한되는 것이 아니라 '책과 상호 작용하는 과정', 즉 책을 쓰고 출판하고 읽는 과정까지 포함돼 있다. (63)

사상 기계로서 책

책에는 사상이 담겨 있어야 한다. 더욱이 책은 그 안에 담긴 사상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당성을 증명하지 않는 책은 미친 사람의 생각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일개 팸플릿이나 브로슈어에 불과하다. 책은 직설적으로든 아니면 수사법을 쓰든 자신만의 주장을 펼쳐야 한다. 확실한 증거나 반증을 들어 고상하게 독자들을 납득시켜야 한다. 어떤 책의 성공 여부는 그 책이 얼마나 가치 있는 주장을 하느냐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사상 기계로서의 유용성, 즉 저자의 사상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하느냐로 가늠된다. 저자들이 사상의 씨를 뿌리는 사람이라면, 그 씨를 잘 가꾸고 키우는 것은 충ㄹ판사들이다. 출판업은 전통적으로 문화적 차이를 만드는 일에 열성적이며 호의적인 출판사들이 저자들의 사상을 잘 어루만져서 세상에 나오게 하는 산업이다. (65)

상호 작용성

책은 반드시 독자와 상호 작용해야 한다. 책은 한층 더 미묘한 '내면화된' 상호 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상호 작용은 곧 읽기를 말한다. 독자들은 뇌신경 물질을 이용해 상상력을 발동시키거나 외부의 자극과 간섭 없이도 텍스트 안에서, 혹은 텍스트 없이도 단어를 연결해간다. 독자들의 뇌가 페이지 위의 단어와 여백을 만나면서 일어나는 반응을 '내적 활동'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런 내적 활동은 독자들이 페이지마다 나오는 단어와 구절을 읽으면서 그 참뜻을 새겨가고, 이렇게 마음 속에 새긴 참뜻에 자신의 삶과 세상을 연결시켜아갈 때 일어난다. 이런 과정은 독자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기 떄문에 자신 외에는 아무도 알아챌 수 없는데, 바로 이런 점이 책 읽기의 핵심이다. 좋은 책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간에 독자가 해당 주제를 더 깊게 파헤쳐보도록 유도해 같은 분야의 다른 작품을 읽게 만들고, 독자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찾도록 이끌 것이다. ...내적 활동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고 주석과 참고 문헌을 찾아 도서관 서고를 들락날락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깊은 사고'를 통해 '깊은 대화'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책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책 속에 담긴 사상이 깊은 사고 과정을 거쳐 충분히 고찰되고 기술적으로 잘 다듬어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인간의 본질을 곰곰이 생각해보고 인간과 관련된 더 큰 문제들을 진정으로 깊이 생각해야 할 때 인간은 책을 찾게 된다. ...그래서 좀 더 폭넓은 대화를 나누려면 대화의 기준으로 삼을 만한 책이 꼭 있어야 한다. (69)
책을 고이 간직하는 덕분에 우리는 책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알게 된다. ...인터넷이 그저 '사람들이 말하는' 공간으로 누구나 바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곳이라면, 책은 '사람들이 말하기 전에 생각을 정리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논거나 증거에 근거한 분석에서 나오는 신중한 생각과 충분한 사고에 의지한다. 이렇게 깊이 생각하는 풍토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책 문화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에게는 만만치 않은 시간과 에너지를 바쳐가면서 기꺼이 책을 쓰는 사람들의 깊이 있고 신중한 생각들이 꼭 필요하다.(76)
"책은 시간을 먹고 산다. 책은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책을 쓸 때는 물론 읽을 때도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 단어나 쓸 수도 없기 떄문에 반드시 가장 적당한 단어를 찾아야 하며, 책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수 백 페이지에 걸쳐 일관된 논거를 유지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적절한 단어와 어휘를 동원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분명하게 전달한다. ...게다가 책을 쓰는 데 들이는 시간은 저자들이 자신의 책에 좀 더 깊이 몰두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책은 현안 문제들을 다룰 때 다른 미디어 형식에 요구되는 속도처럼 즉각 반응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같은 사안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하고 전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책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여기에 사용되는 수많은 단어들은 여백을 만들어내는데, 독자가 이 여백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 ...결국 책은 시간과 깊이 연관돼 있다. 책을 읽으려면 시간에 쫓기지 않는 느긋한 마음 자세를 우선시해야 하기 대문에 독자들은 당연히 느긋해질 수밖에 없다. 독자들은 책이 대화를 시작할 때 각 페이지에 들어 있는 단어들이 살아 움직여 대화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책을 쓸 떄의 속도와 같게 천천히 책을 읽으면서 단어들을 음미해나가야 한다. ...(81-85) ...(81-85)
책은 생각을 필요로 하며, 저자는 자신의 텍스트를 완성하기 위해 몇 개월에서 몇 년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이렇게 완성된 텍스트를 출판사가 이해하기까지 중간에 적당한 시간이 필요하며, 독자가 이 텍스트에 참여할 때까지 일정한 기간이 또 소요된다. (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