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一理-읽기/책 그리고 패턴

커뮤니티에서 연결로 대물림으로

一理ROASTERS 2022. 6. 23. 14:13

로버트 코링턴의 <해석의 공동체>라는 책입니다.

1. 태초의 커뮤니티 - 가족

태어나자마자 우리는 커뮤니티를 갖고 있습니다. 아버지 쪽의 본가/어머니 쪽의 외가라는 곳이겠지요. 가족부터 본가/외가의 사람들까지 굉장히 이질적인 사람들의 집합입니다. 다른 환경에서 자란 어머니 아버지가 만나, 아버지 어머니를 완전히는 닮지 않은, 일부 영향을 받았지만 마냥 같지 않은 요상한 아이가 태어납니다. 그 요상한 아이들이 바로 저희겠지요.

 

2. 강제적 커뮤니티 - '공/사교육 과정'/종교

그런 아이가 또 요상한 아이들을 만납니다. 유치원, 학교 등에 국가의무교육으로 인해 입학하면서 요상한 아이들끼리 부딪치고, 힘의 길항 작용이 여기 저기 발생하면서, 성장해나가거나 어그러져갑니다. 그런 '어쩔 수 없는' 학교라는 정글/관문을 거치면서 성인이 되며, 계속 어떤 관문을 통과합니다.

다음은 종교입니다. 종교는 가족 커뮤니티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동시에, 국가 교육 과정에 의한 커뮤니티의 작용 방식과 비슷한 역동을 띄는 데, 무의식과 언어 습관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가장 강력한 거 같습니다. 학교와 종교의 영향력 부분에 있어서, 저는 감히 종교가 더 크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잘못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다닐 수밖에 없는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학교는 어느 정도 나이와, 자격요건만 갖추면 나와야 하는 '시간제한'이 걸려 있는 장이니까요. 미디어와 전자기기의 영향도 있겠습니다만, 그건 커뮤니티라기 보다는 '기술적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제외합니다.

 

3. 자발적 커뮤니티(1) - 피씨방과 농구장(남자 기준)

인간은 개별로 존재할 수 없고, 결국 타인의 영향력 혹은 집단, 혹은 어떤 분위기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환경에서도 자발적 커뮤니티가 나옵니다. 제가 남자로 자라와서 그런지, 운동은 일상이었습니다. 운동을 하다보니 그 과정에서 친구도 생기고, 제가 동네 농구장 죽돌이였어서 동네 형들과 친해졌었지요. 그 외에도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의기투합을 하는 케이스들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어떤 깊이있는 사귐이었다기보다는 공통 관심사와 얽힌 '어울림' 정도에 그치는 정도겠지요. 

제게 있어 커뮤니티 공간은 유초등학교 시절에는 놀이터고, 중고등학생 때부터는 피시방이었습니다. 유행하는 게임으로 경쟁을 하면서, 전우애(?)를 확인하는 곳이지요. 물론, 게임방에서 서로 돈독해지기보다는 도태되는 경우도 많지요. 게임을 못한다는 이유 때문에요. 또한 틈틈히 동네에서 농구장에 가면, 농구하는 형들을 만나는 것 역시나 커뮤니티 활동입니다. 형들과 농구시합을 한다든가라는 루틴이 있었습니다. 끼워주고 환대해주는 이들이 좋아서 계속 했습니다. 더 잘해지고 싶어서, 몇 가지 기술을 노력해서 터득하기도 했습니다. 제 커뮤니티에 대한 짧은 체험은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중간 이상의 실력을 갖고 있어야 하는 조건이 붙어 있지요. 즉, 커뮤니티의 장은 일종의 결속의 장이자, 조금 더 운동 관련해서 현란한 기술이 발휘되고 공유되는 장이 됩니다. 

 

4. 자발적 커뮤니티(2)- 과 선후배/ 조별 과제/ 동아리

이런 과정을 거치고 성인이 됩니다. 자연스레 피씨방을 종종 가긴 하겠습니다만, 이제는 타인이 짜준 타임테이블이 아닌 본인의 타임테이블을 짜야하는 시기가 도래합니다. 대학생이 되면 조별 과제, 과 내, 뿐만 아니라 '동아리'라는 일상이 존재합니다. 취업 준비의 관문을 뚫느라 그 마저도 이제는 흐지부지됐지만, 그래도 소수라도 커뮤니티를 지속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예전같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게, 코로나가 터진 이후에는 안그래도 주춤한 동아리 커뮤니티가 더욱 더 활기를 잃었다는 데 있습니다. 과 선후배는 진작부터 느슨해지기 시작했지요. 대학별 기풍 차이도 있겠지만, '꼰대'와 '건방짐'이라는 극단적 시선들에서 선후배는 점점 더 멀어집니다. 

 

5. 자발적 커뮤니티(3) - 지나치게 열린 인터넷 커뮤니티/스스로 선택가능한

커뮤니티, 지금은 '인터넷' 전용의 개념이 된 거 같습니다. 인터넷 카페, 블로그,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일종의 커뮤니티라고 칭하기가 애매한 게, 끈끈하지 않거든요. 피드의 즉흥성이 강하고, 그 즉흥성으로 좋아요를 표현하는, 지나치게 열림으로 인해, 그 열림을 활용해 마케팅 수단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좋아요라는 행위가 누군가에게 이득을 주거나, 일희일비하게 합니다.

인터넷으로 파생된 커뮤니티는 간혹 오프라인 모임을 하기도 합니다만, 그 지속 가능성은 제가 체험해보지 않아서, 여기까지. 번개 모임이 있어서 참석한 적은 있지만, 꾸준한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았답니다. 끈끈함이라기보다는 즉흥적으로 내지르는 그런 장소이지, 어떤 매너라든가 그런 것이 담보되지 않습니다. 익명성과 커뮤니티가 어떻게 공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의외로 익명성에 표기된 아이디에는 은근 '이드'와 드러내고 싶은 모습이 있다는 면에서 정체성이 반영되어 있기도 하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인터넷 커뮤니티를 활용해본 것은 음감 활동으로 인한 것입니다. 음감활동을 지속하면서, 어떤 브랜드, 어떤 가성비, 어떤 리뷰를 보면서 제 취향을 알아가며 반영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됩니다. 제가 주목하는 지점도 이겁니다. 정보의 편중과 다양성에 대한 부분입니다. 그래도 제가 졸업할 때는 동아리 회장을 해버렸습니다. '스터디 동아리' 취업 스터디 아닙니다. '철학 동아리'입니다.

 

6. 그래서 뭘 말하고자 하는 데? - 좀 더 나은 공유를 위해/ 더나아가 대물림을 위해!

하지만 제게 커뮤니티 개념은 '동아리'와 근접하게 규정을 합니다. 어떤 동아리에 4년간 존버했습니다. 그곳에서 같이 밥도 먹고, 세미나도 돌리고, 그리고 어설프게 발제지를 만들면 거침없이 말로 얻어맞는 연습을 줄창했습니다. 그렇게 버티고 버텨, 그 동아리의 회장까지 하게 됐는데요. 커뮤니티란 무엇인가 그 자체에 주목했던 거 같습니다. '함께 함'의 가치를 되살릴 수 있는 것, 또한 이를 '대물림'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천착했지요. 정보의 접근성, 연계성, 정보의 넓음과 깊음 동시에 생동감있는 체험이 동시에 공존하는 커뮤니티로서 오프라인 '일리-공간'을 운영해나가려 합니다. 무엇보다 그러한 접근으로 인해, 우리의 체험이 공유되는 '해석'의 과정이 쌓이면서, '발전' 혹은 '퇴화', '분쟁'도 생기겠습니다만 그것도 해석의 과정이니까요. 차분히 듣고, 정제해서 말하고 하는 과정으로 이어질테니까요. 이러한 정제된 말을 인터넷 제국(?)도 틈틈히 쌓아올릴 예정입니다. 좀 더 나은 공유 및 연결 더 나아가 대물림을 위해서 말이죠. 그러니 정보 접근을 넘어 '해석의 공동체'로서 다리를 놓는 '일리-공간/사이버스페이스'를 만들어 나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