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一理-읽기/일상 그리고 패턴

신체, 몸 그리고 직관력에 대해 / 우치다 다쓰루 <소통하는 신체>1

一理ROASTERS 2023. 5. 11. 16:52

위험 신호는 '몸'이 먼저 반응한다. '뇌'에서 이뤄지는 분석은 그것보다는 우치다 선생님의 표현처럼, '뇌'가 만들어낸 서사에 현상을 끼워맞추려는 '합리화'의 과정이었던 거 같다. 몸은 이미 여러 번의 신호를 보냈었다. 특히 사람에게서 풍기는 인상 혹은 칭찬에 담긴 악의를 본다든가, 혼내는 말에서 배려를 본다든가 등등 그런 신호를 받을 때가 많았으나, 이를 '편견'이라 치부했던 거 같다. 뇌가 몸의 신호를 차단해왔던 것이다. 뇌에 주입된 스토리 즉, 모두를 아끼고, 편견없이 바라봐야 한다는 '스토리'가 주입됐기에, 혹은 '착한 아이 컴플렉스'든 되려 그런 위험 신호를 부정해왔었다.
그러나, 신체의 말을 들었으면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아도 됐었던 경우가 훨씬 많았었다. 즉, 몸의 신호보다는 메시지 그 자체(기표)에만 더 스토리에 끼워맞추려 하지 않았나 싶은 거다. 제대로 메시지만을 읽으려는 노력이 되려, 오독이 되어버린 것이다. 행간의 뜻과 의도를 봐야 하는 데, 그것은 몸으로 이미 자각했던 거 같다. 그렇기에 <소통하는 신체>라는 제목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뇌가 짜맞춘 세계관은 몸에게 스트레스를 줄여주지만, 결정적으로 몸을 홀대한다. 잠시 뇌에 몸을 맡기지 말고, 몸의 오롯한 말을 듣고, 몸의 신호를 '각성'시키는 경지보다는, '순간'에 집중하는 '좀 더 주의깊은 관찰'을 연습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걸음마부터. 

"내 신체는 나의 '도구'이므로 마음대로 혹사해도 된다. 신체는 모든 것을 바쳐서 뇌의 욕망에 봉사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며, 그것도 아주 긴 역사를 가진 뿌리 깊은 이데올로기입니다. ...'자신의 신체에 경의를 표하기'란 지금 내 신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에 관한 메시지를 주의 깊게 '듣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신체는 어떤 자세를 취하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먹고 싶어 하는지, 어떤 촉감의 옷을 입고 싶어 하는지, 어떤 목소리의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어떤 식을 자기 몸을 만졌으면 하는지... 그런 것들은 머리로 생각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몸에게 물어야 합니다. ...그러나 뇌의 명령을 신체가 거부할 떄, 대부분 사람들은 뇌의 편을 들어 신체의 저항을 제압하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신체는 늘 게으름을 부리려 하고 안락을 원하고 반사회적인 '쾌락'에 빠지려고 하니까 그것을 뇌로 규제하고 통제해서 '일' 하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교육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신체가 보내는 메시지를 들으면 안된다'고 믿게끔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73)
사람 신체는 생존전략에 충실하기 때문에 신체에 위험 징조가 있으면 반드시 반응합니다. ...위험 체계가 작동해서 '가지 마'라고 몸이 말하기 시작합니다. 반면에 뇌는 '다수가 가는 곳은 안전하다'라고 생각합니다. '다수와 함꼐 행동하는 것이 단독행동보다 생존전략상 항상 유리하다'는 것은 근대 이후에 지배적이 된 개념입니다. ...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의 많은 부분은 '대중 사회의 행동 코드'와 '개인의 신체가 생존을 원해서 발신하는 신호' 사이의 알력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신체가 무언가에 반응하고 '더 이상 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 생존에 위험하다'는 신호를 발신할 때가 있습니다. ...뇌와 신체가 다른 말을 하는 겁니다. ...이 갈등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뇌는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이 아닙니다. 비즈니스에 성공하기 위해서나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뇌가 더 도움이 되겠지만 죽느냐 사느냐 하는 극한 상황에서 뇌에 의지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뇌가 만들어내는 것은 환상이며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있어야 다양한 스트레스로부터 몸을 지킬 수 있지만, 생사의 경계, 즉 '이야기'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장면에서는 뇌의 판단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신체를 믿어야 합니다.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