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一理-읽기/일상 그리고 패턴

학교 이후의 배움 / 우치다 다쓰루 <어른이 된다는 것> 4

一理ROASTERS 2023. 5. 14. 13:41

'지식'은 아무리 부지런히 모아도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성'이다. '지성'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매핑mapping'하는 능력이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말할 수 있고 필요한 데이터와 기술이 '어디에 있고 어떤 수순을 밟으면 손에 들어오는지'를 알고 있는 것이 '지성'의 작용이다. 학교라는 곳은 원래 그것만 가르쳐야 한다. '물고기를 먹이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말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포함한 시스템 전체에 대한 개괄적인 '겨냥도'를 갖고 있을 필요가 있다. 

매핑을 위한 물음이란
'나는 어디에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어디에 있지 않은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가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이 아닌가?'
'나는 뭘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뭘 할 수 없는가?'
하는 일련의 부정적인 물음이다. 

학교 교육이란 원래 그런 부정적인 질문을 하는 연습을 위한 장이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말로 하며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와 조건에 대해 배워서 아는 것, 그것이 학교 교육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의 거의 대부분이다. 그것만 제공할 수 있다면 모든 장소는 '학교'다. 그것은 제도일 필요도, 공간적 현실일 필요도 없다. ...지성이란 '자신의 불능을 언어화하는 힘'의 다른 이름이고 '예절'과 '경의'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이 학교 교육에서 습득해야 할 기본이다. (67~71)

아직 젊은 축에 속하는 나이를 살고 있습니다만, 인생의 진짜 시작점은 학교를 벗어나서 시작인 거 같습니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런 고민의 시간이 주어졌고, 선배들의 나아간 길을 보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유추하는 환경에 물들게 됩니다.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한다는 것은 선배들의 '전형'을 따라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도달하지 못한 경험이기에, 선망과 시기 질투와 버무려진 상태에서 시간 차이만 있을 뿐이지, 조만간 도달하게 될 정해진 미래에 조급해집니다. 그렇게 졸업을 하면서, 그 미래가 선망할만한 미래는 아니었구나, 스스로가 어렸음을 어리석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대학생 시절에는 되려 선배들의 길을 보면서, 나는 저들의 길을 갈 수 없겠구나, 인용된 본문에서 다뤘듯 '뭘 할 수 없는가'를 깨달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학교는 제게 '겨냥도'의 역할을 제대로 해줬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에는 전공과 무관한 일을 하고 있지요. 혼자서 잘 하는, 혼자서 뛰어난 실력을 갖출 수 없습니다. '매핑'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실력'이라는 말이 남용되고 오용되는 현실 속에서, 그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매핑없이 어찌 '실력'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제게는 학교 바깥에서 저를 가르쳐 주었던 커피집 사장님, 우연히 발견한 헌책방 사장님, 수제맥주집 사장님들, 글 잘쓰는 교수님 등의 대화와 만남을 통해, 일리 공간을 기획하고 상상하면서, 기회가 잇닿아 만들게 됐습니다. 일리 공간에는 대학생 시절과 졸업 이후의 유흥(?)의 경험과, 그들이 일구어낸 '공간의 경험'을 버무려져 있습니다. 학교에서 벗어난 바깥의 학교에서 저의 길을 매핑하면서 기획할 수 있게 됐고, 책임지고 오롯이 감당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이죠. 학교 이후 학교를 통해, 매핑을 해준 훌륭하고 친절하고 인내심있는 가이드를 통해서요. 

학술 연구 논문이 먼저 선행 연구 비판에서 시작하는 것은 '자신의 위치를 아는' 것이 '자신의 오리지널리티', '유일성'을 알기 위한 단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주체성이란 '자신은 다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라는 지각과 함께할 때만 성립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매핑이 불가결하다....자신이 이 사회의 어떤 위치에 있고 지금 나아가고 있는 길은 어디로 향하고 있으며 그 앞에는 어떤 분기점이 있고 각각의 분기점은 어디로 연결되어 있을까. 그것을 알지 못하는 자는 매핑을 할 수 없다. 매핑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주체성을 가질 수 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매핑이라는 것은 '자신이 있는 장소', 즉 '공간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장소', 다시 말해 '다른 누구에 의해서도 대체불가능한 장소'를 특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