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理ROASTERS 2021. 6. 29. 14:56

-광화문에 먹을 것이 많아, 약속을 광화문에서 잡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을 때, 시간을 때우는 곳은 보통 교보문고(광화문점)이었어요. 혹은 영풍문고(종로)였었죠. 저희 동네 근처에도 교보문고(잠실)이 있습니다만, 아크앤북이라는 화려한 인테리어를 가진 '아크앤북'이 생겼습니다. 교보문고(잠실)이 훨씬 접근하기 편했지요. 아크앤북이 화려하지만, 엘레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번거로움에 비해서 교보문고가 훨씬 편했으니까요. 그리고 최근에 고급진 인테리어로 바뀌었고, '사적인 서점'과의 협업으로 인해 조금 더 다채로워졌어요. 대형서점은 일종의 약속 장소로서의 의미를 가집니다. 혹은 시간을 때울 장소!

 

-최근 5년 사이에 많은 것이 바뀌긴 했습니다. 책을 사는 데 중점을 두기 보다, 두 서점 다, 교보문고는 엄청 좋은 목재로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고 뉴스화되기도 했었고, 그게 성공적으로 작용해서 많은 이들이 교보문고를 가곤 했습니다. 두 축을 이루던, 영풍문고의 열세가 뚜렷했었죠. 뉴스기사가 잘 안나왔던 걸 보면, 주로 교보문고에 사람이 훨씬 많았던 거 같습니다. 그래도 제가 원하는 매니악(?)한 인문서적을 접근하기에는 영풍문고가 좀 더 좋았지요. 

 

-2017년 책을 공급하는 책 도매상인 송인서적이 부도났었죠. 출판사들도 동시에 휘청였습니다. 최근에는 반디앤루니스가 부도났습니다. 역시나 재고를 돌려받는 부분에 있어서 출판사들의 피해가 엄청났죠. 송인서적은 출판계 몰락의 시작점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희망이 넘치는 출판'계'로 변화해갔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그 전망이 썩 밝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교보문고의 고객친화적인 인테리어도 문제가 있었지요. 책을 '파는' 곳이 아닌 '보는' 곳이 되어버렸기에 책이 제자리에 꽂혀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책은 이미 손상된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도 저는 책을 직접 보고 사는 것을 좋아하기에 교보문고에 직접 가서 사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새 책을 사는데도 헌 책을 사는 인상을 많이 받습니다. 물론 교보문고 뿐 아니라 대형서점의 고질적인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책이 사람 손을 타니까 헌책이 되어갈 수밖에 없지요.

 

-대형서점에서 책을 잘 사지는 않습니다. 제가 원하는 책이 오프라인에 없는 경우도 많아서도 그렇고, 인터넷 주문이 보편화됐으니까요. 도서정가제 이후의 책을 사는 데 있어서, 조금 부담스럽긴 했어요. 정가제 이전에 인터넷 서점에서는 폭탄 세일로 좋은 책이 풀리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그때 묻어가면서 책을 대량으로 살 때의 쾌감이 지금은 없지요. 손님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아쉬워요. 업계의 입장에서 이게 더 좋다는 것도 이해하지만요. 

 

-대형서점에서 제가 하는 일은 어떤 '트렌드'를 파악하는 데 있습니다. 너무도 트렌드와 동떨어진 책을 취급하는 북랩이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관심있어 하는 주제를 파악하고 있지요. 물론 그런 책은 사지는 않습니다. 대형서점은 책을 파는 책방이 아니었던 겁니다.

 

-출판사 영업사원에 있어서는 대다수에게 책을 알릴 생존의 공간이며, 누군가에게는 트렌드를 읽는 공간, 약속을 기다리는 이에게 있어서는 시간을 때우기 좋은 공간이겠지요. 근처에 놀 것이 많으니까요.

 

-도서정가제 이후에 책방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명확한 테마를 가진 책방들이 출현했지요. 저도 그 분위기를 타서 제 매장을 만들었지요. 특히 책방 붐을 이어간 데 있어서, 맥주+책을 동시에 판매한 '북바이북'의 견인차 역할도 컸습니다. 아, 내용이 이게 아니었지. 명확한 테마를 가진 책방은 나중에 소개하기로 하지요.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제가 대형서점에 이미 물들어버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제 공간을 설계할 때도, 어쩔 수 없이 참고한 게 대형서점입니다. 랜드마크는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줍니다. 그 랜드마크가 사람들의 트렌드를 지배하지요. 여전히 베스트셀러라는 게 나오는 것을 보면 책은 쉽사리 망하지 않을 것이고, 그 베스트셀러의 흐름을 만드는 곳이 대형서점이니까요. 또한 대형서점을 대형서점스럽게 만든 '방송'의 역할도 큽니다. 그들에게 책을 추천받고, 그 추천받은 책을 보기 위해 대형서점으로 가니까요. 책이 그닥 효용성이 없다지만, 어떠한 랜드마크에 소속된 대형서점은 절대 망하지 않을 거 같습니다. 우리는 결국 어떤 랜드마크를 통해 그 동네를 인식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