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一理-읽기/일상 그리고 패턴

타인의 행복에 좌우되는 나의 행복 / 김영민 <산책과 자본주의>5

一理ROASTERS 2023. 6. 4. 15:48

핸드폰은 스스로를 門이나 窓으로 위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내게 핸드폰은 그 소지자의 생각과 태도와 동선을 상호 모방시키며 고착시키는 거울로 여겨진다. 요컨데, 핸드폰은 세상을 향해서 열려있는 異化의 창/문인양 행세하지만, 그 실질적 용도를 엄밀히 헤아려보면 오히려 사용자 그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同化의 거울이라는 것. ...이윽고 핸드폰은 전자적 정보 매체로 구성된 거울사회의 페티쉬, 그 물신이 된다. ...핸드폰이라는 사이비 창/문은 조직적 나르시시즘, 체계적 자기증식의 사회인 우리의 거울사회가 '거울'이 아니라 '창/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허위의식을 뻔뻔스럽게 전시해 놓는 장치로 보인다. 이미 그것은 종교와 사랑만이 아니라 자본과 권력조차 흡수하는 나르시시즘의 표상으로 우리 사회를 종횡한다. ...거울사회의 마스코트이자 呪物인 핸드폰은 창/문이 없는 거울이다. ...우리 모두는 핸드폰을 통해서 '자신의 참된 존재를 헛되어 추구'(보부아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80-82)

직전에 쓴 글의 기원을 찾아냈습니다. 역시나 제가 한 생각은 누군가의 통찰에 빚지고 있습니다. 바로 지혜의 샘물, 김영민 선생님의 <산책과 자본주의>입니다. 자크 라캉의 자기 자신의 욕망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라는 그 물체, 바로 스마트폰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스마트폰이 만악의 근원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제가 어렸을 때도, 친구들이 가진 로보트 장난감을 갖고 싶었고, 친구들이 가진 '게임 소프트웨어'를 갖고 싶었듯이 말이죠. 새삼 '아무 카페나 가자'라는 말이 미덕이 되는 시대가 될 줄 몰랐습니다. 무엇보다 SNS에서 타인의 기록에서 만족을 상상하며, 그들의 만족을 따라하는 삶이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글을 쓰는 저조차도요. 더 나은 만족이, 포스팅수에 있다는 차원에서, 그리고 현지인들이 좋아한다는 누적된 기록의 취합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착각도요. 여튼 한 손에 행복이 있습니다. 내 행복이 아닌 타인의 행복을 따라한다는 행복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