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자기계발서의 시대
제 인생의 자기계발 장르의 시작은 '자수성가'와 관련이 있습니다. 1990년대 '성공시대' 프로그램을 아버지와 열심히 챙겨봤지요. 이 프로그램과 연관해 '성공자서전' 혹은 '전기'가 유행했었습니다. 90년대에는 영웅들이 범람했고, 그들은 영원히 고고히 서있을 거 같았지요. 그러나 IMF 이후 영웅들의 몰락이 시작됩니다. 이 위기를 겪은 후, 쇄신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경쟁을 긍정하며, '공정한 경쟁'을 말하긴 했지만 내 주위에는 경쟁을 이유로 성적이 낮은 학생에 대해서, 높은 학생에 대한 차별이라는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좋게 표현하자면 등급별 나눔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런 시대였지요. 그래서 시대를 선도할 엘리트를 갈구했던, 자연스레 학생들에게 '엘리트'상을 강요하며 좋은 성적,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중요해진 시대였지요. 그리고 그 경쟁에 대해 성찰하면서, 지쳐 있는 이들을 위한 패배자를 위한 위로가 필요한 시점, 그리고 그것을 보강해줄 인민의 아편, '인문학'이 등장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흐름에 저 역시 발맞추어 기존 자기계발서를 나름 진득하게 탐독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중고등학생 시기는 한참 꿈을 꿀 때였고, 막 스무 살이 넘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나마 믿을만한 가이드가 '계발서'였던 것이죠. 그렇기에 자기계발서를 찾으러 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현재는 극우유튜버가 된 분도 있고, 그리고 찰나의 인문학붐을 일으킨 분도 기억나고, 동시에 고단한 삶을 잠시 놓으라는 '힐링'류가 기억이 납니다.(이와 덧대어 먹방의 부흥도 이와 맞물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힐링!) 현재는 '적극적인 상담' 혹은 '빡센 훈련'으로 인한 심하게는 극기, 소소하게는 변화를 지켜보는 관찰 예능도 또다른 자기계발의 흐름에 놓여 있다고 봅니다. 이제는 적극적으로 '상담'이라는, '훈련'이라는 수단으로 스스로를 개조하는 데까지 나아왔지요. 스스로 깨우치기 보다는, 전문가를 통한 효율적 자기 개조를 원하는 듯 보입니다. 되려 이런 현상은 '자격증 중심주의(?)'를 강화하지 않을까 싶네요. '수료'증이 남발되는 현상도 종종 있었지만, 이제는 통용되는 시대도 곧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흐름을 형성한 유명인들이 영향력을 넓혀나가는 방법 중에, 정규 '강의' 혹은 '코스'를 만들고, 그것을 상품화합니다. 이는 마냥 안좋게 바라볼 필요가 없는 게, 방송 인기가 오래가지 않거든요. 그렇기에 브랜드를 통한 이익 추구라고 담백하게 정의해봅니다.
나이가 들면(?). '누군가'와 '어디'를 가고, '어디'에서 '무엇을 먹는가'의 문제 밖에 남지 않습니다. 고작 서른 조금 넘게 살아봤지만, 삶이 다소 심심합니다. 조금 더 심화하자면, 어디에 살 것인가 어느 규모(?), 어느 경제적 조건이 포함된 부동산도 포함이 될 수도 있겠네요. 대학교를 졸업하면, 혹은 대학교 재학 시절에 이미 삶을 영위하는 것들, 특히 할 수 있는 것들이 꽤나 제한적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는 시기입니다. 그렇다면, 성공의 이미지는 무엇일까요? 넓은 집, 강남, 좋은 차 정도겠는 데, 2022년에는 미니멀리즘이 강세가 될 줄 알았건만 여전히 산업화 시기의 욕망과도 맞물리는 거 같습니다.
기존 자기계발서의 문법을 뒤집다
제가 지금 소개해드릴 책, <단단한 삶>입니다. 그동안 일관되게 흐르던 '자립'이라는 궁극지점 더 나아가, '자수성가'라는 '개인화'에 대한 이야기. 사실 '개인'에만 의존한다면 자수성가를 이룰 수 없습니다. 자립에 대한 이야기가 다르게 시작한다. 자립은 '의존'부터 시작하는 것, 잘 의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이지요. 논리적으로도 반박불가입니다. 모든 성장 또한 모든 구성원들 뿐만 아니라, 국가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세계적'이 될 수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기존 자수성가가 이기주의 및 희생에 기반한 성공이었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의존'은 '협력'과 '상호성'이 더 부각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저자는 이런 '성공가도'에 대해 비판을 합니다.
이러한 의존 아닌 삶이 무엇인가 '자기애' 입니다. 또한 자기애는 아무래도, 타인을 억압하면서 자기를 보존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지금도 여전히 '자존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저자가 이해하는 '자기애'는 '이기주의'입니다. '타인'의 영역을 침범해서라도 사랑하는 그런 굴절된 자기애이지요. 사실 2000년대가 막 시작될 무렵 흥행했던 성공가도 장르는 타인을 신경쓰지 않고 그들을 밟고 올라서는 데 있었습니다. 함께라기보다는 '계급'을 우회적으로 아니 어찌보면 가장 대놓고 추구했던 시절이었던 거 같습니다. 그때의 아이들이 지금 어른이 되어, 그런 말들을 세련되게 싸지르고 있지요.
이 책의 재밌는 점은 '우정'을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자기계발서'가 아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함께'를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또한 그런 자기계발서 세계관에서 '타인'이 어딨습니까? 모두 자기 자신만을 극도의 이기주의와 실력주의로 치장한 학력주의와 점수주의로 가는 것이지요. 지금에서야 증명됐지만, 점수와 경제력이 비례관계임은 이미 밝혀졌지요. 여전히 아버지의 무관심+어머니의 정보력+할아버지의 재산은 세상에서 유리한 스타트를 할수 있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물론 화목하고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이들이 매너좋고 하는 것은 맞지만, 여기서 다룰 문제는 아닙니다. 그전 기억으로 '우정'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화목한 '자기가 만드는 가정'의 레퍼토리를 주입받았던 시대에 친구는 단지 부산물이었고, 전기물이나 에세이류에나 있을 법한 '설화'나 '동화' 정도겠지요. '우정'하면 오글거리고, '연인'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뭉게지는 그런 취약한 무언가겠죠. 자기계발서에서 '우정'이라니 굉장히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후 꿈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꿈은 부정형 문장이 아니다. 과정을 중시하는 방식 즉, 고정된 휴먼빙(Human-Being)이 아닌 빙휴먼(Being-Human)에 대한 이야기, 인간의 되어감의 이야기입니다. 기존 문법 즉, 휴먼빙은 어떤 직업 혹은 어떤 것을 획득한 '고정된 그 상태'에 주목하는 반면에, 빙휴면은 몸의 감각을 받아들이고, 체감하는 것, 그 리듬을 느끼는 것입니다. '과정'과 순간 순간 맛보는 것들에 대한 것이지요.
책 구조가 수미쌍관형 구조로 보입니다. '함께'로부터 시작해서, 결국 '자립'으로 마무리됩니다. 후반부에도 자존감을 다룹니다. 더 나아가 '자기 혐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자기혐오를 벗어나는 법을 말할 때, "자기 암시가 아니"라고 역설합니다. 그리고 분류를 세분화합니다. 이기주의자는 물질을 중시한 나머지 평판을 포기한 부류로, 이타주의자는 평판에 매몰되어 물질을 포기한 이로 분류되며, 이보다 더 최악은 둘에 안좋은 것만 해당되는 변변찮은 자입니다. 그런데 '변변찮은 자'는 되지 맙시다라는 메시지로 성급히 나아가지 않습니다. 자기 인정은 변변찮은 것을 배격하되, "자기 만의 감각을 긍정하는" 데 있다는 자명한 사실로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자기만의 감각 긍정은 조금 더 심화된 '자립'은 의존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전반부 구성과 후반부 구성이 절묘하게 겹치면서 심화된 '명제: 자립은 의존하는 것'으로 확장되지요. 내 자신을 긍정하는 데 뭐이리 복잡한가 싶다가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자기만의 감각을 받아들이는 데 무척이나 장벽이 많은 사회잖아요? 아파야만 자기만의 리듬이 보이는 세계에서, 아프기 전에 자기만의 리듬을 찾는 책으로서 모두가 읽어야할 필독서가 아닌가 감히 말씀드립니다.
덧: 역자 후기도 눈여겨 보시길!
"그 사람의 진지함, 정보량, 현장경험같은 것을 굳이 따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 사람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어느 정도 의심하는지, 자신이 본 것을 어느 정도 믿지 않는지 그리고 자신의 선의에 묻어 들어온 욕망을 어느 정도 의식화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 그의 욕망, 그의 위화감, 그의 아픔, 그의 고통, 그의 고양감, 그의 몸이다.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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