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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一理-읽기/홀로 오롯이 공부 - 爲己之學17

수줍음의 미덕 / 우치다 다쓰루 <소통하는 신체> 2 제대로 말싸움해본 적이 없습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사회부적응인가 싶었습니다만, 싸움이 촉발되는 지점에 있어서 그 포인트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포인트가 잡히면 이후에 어떻게 분석하고 대응해야 하는지 뇌와 신체가 대립하고 있는 상태여서 그런 거였네요. 조금은 위안을 얻습니다. 싸움에 능한 사람은 아래 인용문에서 말한 것처럼 '그 세대만이 공유한 자유로운 화법'이라는 틀을 가져다 썼기 때문에 손쉽게 고지를 점령할 수 있기에, 능하지요. 반면에, '그 자유로운 화법'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패배는 기정사실화됩니다. 그러나, 수줍고 숙고하는 이들이여, 자유에 길들여지지 않기를! ...주저하거나 수줍어하는 것은 요즘은 거의 아무도 칭찬하지 않습니다. 수줍어하는 사람에게 '좀 더 적극적이 돼라'고 요규하.. 2023. 5. 20.
언어적 감수성 / 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11 공부의 태반은 말/글로써 하고, (좋은) 책읽기야말로 공부의 가장 오래된 전통이다. 그래서 언어라는 도구를 가려 쓰는 솜씨나 감성을 키우지 않으면 공부가 깊어지기는 어렵다. 망치나 거름체나 신발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듯이 학인은 말/글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물론 잘 알려져 있듯이 말/글이 단지 도구적 대상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지만 학인이라면 우선 그 도구적 효율성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어떤 의미에서 공부, 특히 철학과 인문학적 공부는 나날이 말/글의 도구적 효율성을 높여 사람과 그 세상을 보다 정교하고 적실하게 잡아내는 데 있다.(65) 유튜브 없이 못 사는 시대, 시각과 청각을 자극 당하는 시대에서 말과 글은 뒤로 밀려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결국 말과 글의 산을 넘고 넘는 것이 공부일진대.. 2023. 5. 18.
공부라는 오해 / 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10 "제 자신은 무엇인가가 진행되는 장소입니다. ...우리들 각자는 사건이 일어나는 일종의 교차로입니다."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공부의 기본기는 '태도'다. 재능보다 태도를 앞세우는 것은, 그 포괄적 중요성 대문이기도 하지만 태도는 재능과 달리 그 자체가 공부거리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우공이산의 정신이기도 하다. 공부는 '제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다. 제 마음을 어떤 정해진 태도 속에 넣어 갈고 닦는 것이다. (64) 통상 공부를 결심한 이가 제일 먼저 손대는 게 책읽기다. 그러나 바로 이게 병통이다. 그래서, 레비 스트로스의 지적처럼 '정신의 성숙과 생각의 복잡을 혼동하는 일'이 생겨난다. 어떤 공부에서든 (좋은) 책읽기를 생략할 수 없지만, 책읽기는 언제나 반편의 진실을 보여줄 뿐이다. 내가 '공부하.. 2023. 5. 14.
읽기 그리고 글쓰기 / 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9 이론들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이론들을 대화와 응하기 속에 체득해야 비평이 가능해집니다. 좋은 책을 가려 읽고, 정밀히 이해하고, 시간을 두고 묵혀야 합니다. 그 골자를 정리해서 적바림하고, 틈틈이 읽어 암송하며, 일상의 갖은 계기들 속에서 부려보아야 합니다. ...인간의 정신은 언어적 차원을 얻어 탁월해졌습니다. 언어가 없이는 사유가 불가능해진 상태이지요. '제 일을 잘하려면 우선 제 도구를 예리하게 해야 한다'고 했지요. 정밀하고 풍성한 사유의 훈련에 글쓰기만 한 게 없습니다. 긴 호흡으로 글을 스면서, 제 정신의 무늬를 가꾸어 가세요. (46) 공부는 두 가지 밖에 없다. 하나는 (좋은) 책읽기이며, 다른 하나는 여러 형식의 집중하기다. 책이 상품이 된 우리 시대의 경우에는, '읽지 않아야/않아도.. 2023. 5. 13.
사물과 장소 그리고 인간 (김영민 <동무론>) 공부는 스스로 밝아짐이며, 이로써 그 장로를 맑히고 이웃을 돕는 것입니다. 사린四隣 중에서도 특히 약자인 사물을(로써) 돕는 게 곧 장소화의 기보입니다. 휴지를 줍고, 신발을 가지런히 하며, 매사 절용節用하고, 껌처럼 깔려 죽은 짐승을 모른 체 맙시다. 당신의 장소가 당신의 공부를 증명합니다. (김영민 45)사물의 신생은 인간의 책임이며, 물론 그 첫걸음은 개입의 자각에 있다. ...주객의 어느 한쪽에 쏠리지 않도록 인식의 시중을 얻는 일이며, 현장의 사태와 판단에 이미/늘 내가 어떻게 개입하고 있는지를 요득하는 데 있다. ...가령 종교학자 이소마에 준이치가 인용한 어느 승려의 고백을 보자. "실제로 지장상은 모두 같은 얼굴의 석조상이지만, 사람들에게 받들어지면서 다른 얼굴이 됩니다. 부처님은 사람이 .. 2023. 5. 12.
앎이라는 실효성 / 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8 토론에서 이기려면, 지식이 중요했다. 그러나 동시에 지식은 다른 텍스트에서 비롯되기에, 텍스트를 많이 가진 이가 승리하기 마련이었다. '넌 모르지'라는 말로 발려 버리는 굴욕감이란... 그런데 그 토론이 마냥 삶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던 거 같다. 그냥 그 순간에 굴욕감으로, 이기겠다는 투쟁감에서 그쳐버렸던 것이다. 이런 투쟁감에서 발전하기 마련이다만, 투쟁감은 쉽사리 불타오른만큼, 허망하게 꺼져버린다. 여전히 지식은 중요하지만, 비평까지는 안되더라도 이해한 지식이, 곱씹은 지식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아래에 다룬 선생님의 인용구는, 우리의 공부길에 있어, 깔끔하고 단순한 나침반이자 세심한 응원의 말씀. 도량度量을 키우지 않은 채 지식만을 들이쟁이면 안 됩니다. ...과적한 배처럼 침몰하기 때문입니다. 애증.. 2023. 5. 10.
삶은 응하기 / 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7 우리의 주된 삶의 방식, 무엇보다도 살아가는 삶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응하기'입니다. 이웃들 혹은 타인들과의 온/오프라인의 버성김 속에 놓여서 살기 때문이지요. 심지어 혼자 있는 동안에도, 유튜브에 속한 타자와 버성깁니다. '홀로' 역시, '타인'의 해설이 있어야, '홀로'가 비로소 '고독'으로 의미화합니다. 그렇기에 가장 익숙하지만, 결국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보면, 타자에게 버성김을 뚫고 응하기는 어렵고도 어렵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응하기'는 그야말로 전부다. ...우주와 그 생명의 역사는 죄다 장구한 응하기의 과정이다. 응하기를 통해 그 실효를 얻는다는 것은, 곧 삶의 자리가 늘/이미 타자의 세속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愼獨마저도 (어떤) 타자(들)와의 대화다. 생각이 공부가 아니.. 2023. 5. 7.
소소한 구원 / 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6 구원을 '철학적 용어'와 '공부함'의 길과 관련시킵니다. 구원이라면 종교적인 냄새를 풍기는 데, 선생님께서는 이를 철학적으로, 더 나아간 비평으로 해석하십니다. 섣불리 돕는다는 착각으로 많은 것을 망쳐왔던 경험이 떠오릅니다. 사실, 이기적인 이유이고, 수작(?)부리려는 좀스러운 작전이었을 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입과 도움에 대해, 곧 선생님의 책이 나온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구원을 읽더라도, 제 삶에서 구원을 이룰 수 있을지는 참 요원해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냥 제가 맡은 이 공간을 가지런히 가꾸고, 바지런히 자료를 쌓아나갈 밖예요. 구원이라는 게 별스럽지 않다. 자기의식이 자신의 삶과 실천 속에서 완전히 녹아든 게 바로 구원의 징표다. 자기를 바라보는 자기의식이 소외되거나 스스로 버성기지 않으면 그것으.. 2023. 5. 4.
지혜라는 미래 / 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5 지혜는 솟아나는 '영감'의 발현과 비슷한 어감입니다. '솟아난다'는 표현에서 지혜의 이미지가 드러납니다. 무엇보다 여러 영상 매체에서 드러난 지혜의 모습은 '위태'롭지만, 국면을 전환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전쟁 영화에서 이런 지혜라는 이미지를 엿볼 수 있어요. 또한 현실과 타협하는 전략인 동시에, 불법과 합법 사이를 절묘하게 오가는 현대 드라마에서도 나타납니다. 무엇보다 성서에서 '솔로몬의 재판'에서 지혜의 모습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지혜는 무맥락적-무매개적 지식으로부터 '외출', 삶 속에 들어가는 비평적 실천과 함께 솟아나거나 쟁여진다.(그러나 결국 관건은 외출 그 자체가 아니라 외출한 이후에 다시 자신의 집으로 귀가할 수 있는가, 하는 데 있다.) 이미 지적했지만, 실천의 지평에서 동.. 2023. 5. 3.
비평의 정확한 정의 / 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4 이론을 공부한다는 것을 이유로, 우월해진 게 아니다. 이는 자기 위로일 뿐. 이렇듯 그전에 이론을 공부하고 관련 서적을 수집했던 이유는 허영(?)이었다. 스스로 좀 더 우월하다는 자만심에 취하기 위해 공부했었다. 이는 분명 잘못된 방향이었던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김영민 선생님은 공부의 길을 제시해주신 분이시다. 무엇보다 여느 인문강사들과는 달리, 남의 이야기인양 치부하는 비판적 어투가 아닌 '비평의 숲'을 제시하신다.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문제시하는 데에서, 비평의 궁극적 묘가 있다고. 이론은, 특히 인문사회과학의 이론은 비평이 된다. 아니, 오직 비평이 됨으로써만 그 이론은 자신의 존재증명에 나설 수 있다.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비평의 진정한 대상은 타인이 아니다. 몸을 끄-을-고 타자(성)를 향해 .. 2023. 5. 2.
이론Theory을 다룰 것 / 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3 공부함에 있어서, 이론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리고 사회가 좀처럼 좀먹어가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남의 기득권에게 마이크(매체의 주목)가 쥐어지기 때문이고, 물들어가는 한심한 개인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공부를 할 필요가 없고, 풍경만큼은 깔끔하고, 결핍 하나 없이 평화로우니까. 풍경에 가려진 것들을 보려 하지 않기에. 이론을 배우는 것은 (그 경험적 비용과 감가상각에도 불구하고) 느낌의 너머로, 감각의 너머로, 상상(직관)의 너머로 나아가 실제에 박진하기 위해서다. 이런 뜻에서 이론을 배우고 그 뜻ㅇ르 적용하는 것은, 修行의 과정에서 에고를 넘어가려는 실천과 닮았다. 무릇 좋은 이론이란, 개인이 자신의 경험역(經驗域)에 빠진 채 거기에서 생성된 직관적 표상들을 매개적 의심 없이 믿.. 2023. 4. 30.
스승 따위 / 우치다 다쓰루 <스승은 있다>3 80년대 태생인 필자는 수많은 리더들의 몰락을 봐왔던 세대이다. 그리고 그때의 주목받았던 대부분의 리더들은 거품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리더의 발가락이라도 쫓아가려 사교육비를 남용(?)하며, 부모님의 등골을 휘청거리게 만든(그나마 다행인것은 등골을 뽑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리고 수많은 학원을 옮겨 다녔지만 결국 경제적 이유때문에 인터넷 강의를 선택했던 자기주도적 학습을 매우 위태롭고 불안하게 시작했었다. 중고등학생 때, 그 당시에 좋아했던 선생님들은 있었지만, 지금은 찾아가지 않는다. 지금은 좋아하는 선생의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스무살이 훨씬 넘어, 선생 복을 타고 났다라고 느낄 정도로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마주쳐왔지만, 역설적으로 좋은 선생님들은 권력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계셨다. 그래도 .. 2023. 4. 23.
나쁜 질문부터 거르기 /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2 가장 나쁜 질문은 선생을, 그리고 대화상대를 자판기로 취급하는 내용 중심적 단답형이다. 선생이 자판기의 노릇을 참아내야 하는 시기는 학생이 유치원생 이하의 단계에 머물 때가 적당할 뿐이다. ...최소한 공부의 준비가 된 사람이라면 단문단답의 교환장치 속에서 사람들의 관계를 소외시키지는 않을 터다. ...마치 한국 사회에서 영어 실력이 실존용이라기보다 내부 경쟁용으로 활용, 혹은 남용되고 있는 것처럼, 나쁜 질문은 대체로 사감에 얹혀 도발적이거나 반응 형성적이며, 넓은 뜻에서 내부 경쟁용으로 오용된다. (18) 질문은 어려웠다. 제대로 익히지 않고, 틀이라도 잡아여 질문이 생기는 법인데, 질문 시간 때는 좋은 질문을 아니, 적어도 해당 주제에 맞는 질문이 나오는 것을 본 적도 없다. 묵히고, 익힌 다음에야.. 2023. 4. 22.
낮게 삶의 틈을 내어/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1 공부는 시험 점수를 높이기 위한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는 오해를 한 적이 있었다. 내 삶은 그대로이지만, 내 지위를 올리는 것에만 급급했던 거 같다. 말투, 쓰는 문장, 행동거지 등등은 신경쓰지도 않아도 되는 부분이라는 착각을 갖기도 했었다. 인터넷에 널부러져 있는 강의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차후 공부를 하면 될 터였다. 결국에는 돈을 벌기 위한 '공부'가 공부라고 규정된 탓일까, 심리적 장벽이 높게, 그리고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대학교에서 어떤 과목을 이수하고, 학점을 받더라도, 과연 그게 공부의 '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단지 수강하고, 하나의 '분야'를 알게된 것까지가 '강의'에서 기대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내 스스로, 삶에서 공부의 흔적을 쌓아나가는 그런 공부가.. 2023. 4. 21.
'스승의 훌륭함' 배우는 내가 증명한다 /우치다 다쓰루 <스승은 있다>2 저는 어렸을 때, 선생님을 선택해본 적이 없다. 선생님을 선택하는 법에 대해서는,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배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뭘 알아야 선생을 선택할 수 있기에 그래서 선배들이 추천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학점 평가를 후하게 주는지 아니면, 강의를 잘하는지, 과제가 과중한지라는 핵심 기준으로 강사를 선택하게 된다. 돌아보면, 과제를 적게 주는, 점수를 후하게 주는 이가 과연 좋은 강사일 수는 있지만, 선생이긴 할까요? 좋은 선생의 기준은 그러면 무엇인가? 우치다 선생의 말을 들어보자. '선생님은 훌륭하다'나 '스승은 있다'는 일종의 신앙고백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나는 신을 믿는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신과 달리 눈에 보이는 어떤 사람을 두고는 ".. 2023. 4. 21.
저자와 번역자의 신뢰성 / 우치다 다쓰루 <스승은 있다> 1 이 책을 만나게 된 이유는 '박동섭' 선생님 때문이다. 야스토미 아유무 선생의 의 번역자로, 알게 된 분이며 책 날개에 있는 소개부터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동섭_독립연구자. 특정 분야 연구자라는 제도화된 아이덴티티로 살아가는 일의 한계를 실감하며 '아이덴티티 상실형 인간'으로 살면서 공부하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사상가와 철학자들의 언어를 대중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고 알리고자 애쓰고 있다. 덕분에 '박동섭' 선생님(이하 박 선생님)을 역자로 쓴 '유유출판사'는 믿을만한 구석이 있는, 아니 더 나아가 신뢰도가 높은 번역자/저자/출판사였다. 박 선생님은 '우치다 다쓰루' 선생님의 주요 저작을 번역하신다. 박 선생님이 번역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겠거니 싶어서, 퇴근 후 서점에 들러서 박.. 2023. 4. 20.
강유원 <몸으로 하는 공부> 발췌독 #1 - 앎 그리고 공부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아이건 어른이건, 글에 익숙해져 있기 않기 때문이다. 꾸욱 참고 앉아 진득하게 글을 읽는 일부터 해보자. 이런 점에서 글읽기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다. 몸이 무거워지고 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해야 책이 손에 잡힌다. 책이 손에 잡혀야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모르는 게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순간이 바로 지식에의 열정이 시작되는 때이다. 강유원 -'아는 것과 모르는 것', 18쪽 책 제목부터 기본에 충실합니다. 공부는 '몸'으로 하는 겁니다. 공부는 진득하게 글을 읽는 것, 남의 생각을 톺아보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몸에 새기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좋은 책일수록, 몸에 새기기 용이하다는 데 있고, 디테일하다는 데 있습.. 2022. 10.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