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태반은 말/글로써 하고, (좋은) 책읽기야말로 공부의 가장 오래된 전통이다. 그래서 언어라는 도구를 가려 쓰는 솜씨나 감성을 키우지 않으면 공부가 깊어지기는 어렵다. 망치나 거름체나 신발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듯이 학인은 말/글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물론 잘 알려져 있듯이 말/글이 단지 도구적 대상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지만 학인이라면 우선 그 도구적 효율성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어떤 의미에서 공부, 특히 철학과 인문학적 공부는 나날이 말/글의 도구적 효율성을 높여 사람과 그 세상을 보다 정교하고 적실하게 잡아내는 데 있다.(65)
유튜브 없이 못 사는 시대, 시각과 청각을 자극 당하는 시대에서 말과 글은 뒤로 밀려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결국 말과 글의 산을 넘고 넘는 것이 공부일진대, 말과 글에 기민할 수밖에 없는 거 같습니다. 말과 글의 늪지대에서 충분히 구르고, 헤메야만 얻을 수 있는 고통스럽되 영광스러운 성취 즉, '도구적 효율성'일테니까요. 수많은 말과 글이 짓누르는 시대에, 정교하고 적실하게 말과 글을 고르고 고릅시다. 견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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