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말싸움해본 적이 없습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사회부적응인가 싶었습니다만, 싸움이 촉발되는 지점에 있어서 그 포인트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포인트가 잡히면 이후에 어떻게 분석하고 대응해야 하는지 뇌와 신체가 대립하고 있는 상태여서 그런 거였네요. 조금은 위안을 얻습니다. 싸움에 능한 사람은 아래 인용문에서 말한 것처럼 '그 세대만이 공유한 자유로운 화법'이라는 틀을 가져다 썼기 때문에 손쉽게 고지를 점령할 수 있기에, 능하지요. 반면에, '그 자유로운 화법'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패배는 기정사실화됩니다. 그러나, 수줍고 숙고하는 이들이여, 자유에 길들여지지 않기를!
...주저하거나 수줍어하는 것은 요즘은 거의 아무도 칭찬하지 않습니다. 수줍어하는 사람에게 '좀 더 적극적이 돼라'고 요규하면서 도도한 사람에게는 '좀 수줍어해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수줍음이 인간적으로 아름다운 자질이라고 생각하는 관습이 이제는 없습니다. 말이 잘 나오지 않아 머뭇머뭇하고 부끄러워하는, 자기 의견을 말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그래서 결국 상대방의 의견에 동조하고 마는 그런 사람은 현대 사회에서는 '자기결정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몰려 낮은 평가밖에 받지 못합니다.
수줍음 타는 아이를 자기표현 잘하고 자기결정을 할 줄 아는, 자기 의견을 척척 말할 줄 아는 아이로 개조시키려는 교육은 틀렸습니다. 자신의 본성이라든가 자유라든가 욕망이라든가 하는 것은 모두 '뇌'의 작용이기 떄문입니다. 뇌는 어딘가로부터 이야기를 가져와서 다만 그것을 출력할 뿐입니다. ...'자유롭게 의견을 말해보세요'하면 지겨울 정도로 틀에 박힌 이야기만 합니다. ...본인들은 자유롭다 생각하지만 그 자유로움의 방식이 무서울 정도로 똑같은 것입니다. 자신들에게 자유로운 화법이라는 것이 그 세대만이 공유하고 있는 형태여서, 그런 식으로 말하게끔 무의식적으로 강제당하고 있는 것인데, 본인들은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을 신체는 감지할 수 있습니다.
수줍어하는 사람도 머릿속에는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러저러한 기성품 이야기들이 산처럼 쌓여 있기 떄문에 그것을 단지 입 밖으로 꺼내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입에 담으려고 할 때 신체가 거기에 브레이크를 겁니다. 말하려고 하지만 혀가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혀가 뇌에 저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무릅쓰고 말을 하려고 하면 말이 막히고 혀가 꼬이거나 도중에 할 말을 잊어버리거나 얼굴이 빨개집니다. 말을 버벅거리거나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은 신체가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신체가 뇌의 폭주를 저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뇌는 자주 폭주하기에 어느 정도는 뇌를 제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8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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