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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一理-읽기/홀로 오롯이 공부 - 爲己之學

읽기 그리고 글쓰기 / 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9

by 一理ROASTERS 2023. 5. 13.

이론들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이론들을 대화와 응하기 속에 체득해야 비평이 가능해집니다. 좋은 책을 가려 읽고, 정밀히 이해하고, 시간을 두고 묵혀야 합니다. 그 골자를 정리해서 적바림하고, 틈틈이 읽어 암송하며, 일상의 갖은 계기들 속에서 부려보아야 합니다. ...인간의 정신은 언어적 차원을 얻어 탁월해졌습니다. 언어가 없이는 사유가 불가능해진 상태이지요. '제 일을 잘하려면 우선 제 도구를 예리하게 해야 한다'고 했지요. 정밀하고 풍성한 사유의 훈련에 글쓰기만 한 게 없습니다. 긴 호흡으로 글을 스면서, 제 정신의 무늬를 가꾸어 가세요. (46)
공부는 두 가지 밖에 없다. 하나는 (좋은) 책읽기이며, 다른 하나는 여러 형식의 집중하기다. 책이 상품이 된 우리 시대의 경우에는, '읽지 않아야/않아도 될 책들'을 잘 솎오내어야 한다. 좋은 책들도 가슴이 뛸 정도로 많지만, 나쁜 책들을 산을 뒤덮을 만치 널려 있다. 특정한 집중하기 형식에 치우친 이들이 흔히 책을 경시하곤 하지만, 책읽기를 생략한 공부는 없다. 책을 읽는다고 바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무시하는 족족 바보가 된다. ...책읽기 공부가 지닌 최고의 장점은 글을 매개로 삼은 덕에 합리적 이해가 가능하고, 역시 이 떄문에 그 이해의 전수가 용이해서 학교의 전통이 탄탄해진다는 것이다. 학문에서 고전과 정설이 공부의 지남으로 작동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인류의 지식이 당연히 방대, 복합, 첨예해질 때에 문자매체를 통한 책(글) 읽기를 생략한 채로는 그 지성의 향연에 참석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50)

일리 공간에는 이론 도서가 많습니다. 학자가 직접 쓴 원전 역시, 수많은 전통들의 집합체입니다. 그런 전통들이 쌓이고 쌓여, 거인 어깨 위 거인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책의 기준은 '고전과 정설'이며, 그런 것들을 '잘 버무려 놓은' 책이지요. 최근에 한 도서관에서는 '자기계발', '재테크' 도서의 비중이 커지자, 관련 서적을 들여놓지 않기로 결정한 것을 볼 때, 많은 시사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자기계발, 재테크 장르의 도서는 계속 나오고, 폐기되어도 저자만 바뀌어 계속 쏟아져 나올 겁니다. 반면에, 고전과 정설에 관련된 책은 절판 속도가 빠릅니다. 팔리지 않으니까요. 그렇기에 고전과 정설에 관한 책들이 도서관에서도 자꾸 주변부로 내몰리는 거 같습니다. 결국 좋은 책을 고르는 것은, 사서의 몫이 아닙니다. 오롯이 자기 책임입니다. 좋은 것을 얻으려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것입니다. 무릇 좋은 것들은 그런 방식으로만 자기 자신의 고민과 선택의 무게를 감당해나가며 얻어낼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