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리一理-읽기/홀로 오롯이 공부 - 爲己之學

사물과 장소 그리고 인간 (김영민 <동무론>)

by 一理ROASTERS 2023. 5. 12.
공부는 스스로 밝아짐이며, 이로써 그 장로를 맑히고 이웃을 돕는 것입니다. 사린四隣 중에서도 특히 약자인 사물을(로써) 돕는 게 곧 장소화의 기보입니다. 휴지를 줍고, 신발을 가지런히 하며, 매사 절용節用하고, 껌처럼 깔려 죽은 짐승을 모른 체 맙시다. 당신의 장소가 당신의 공부를 증명합니다. (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45)

사물의 신생은 인간의 책임이며, 물론 그 첫걸음은 개입의 자각에 있다. ...주객의 어느 한쪽에 쏠리지 않도록 인식의 시중을 얻는 일이며, 현장의 사태와 판단에 이미/늘 내가 어떻게 개입하고 있는지를 요득하는 데 있다. ...가령 종교학자 이소마에 준이치가 인용한 어느 승려의 고백을 보자. "실제로 지장상은 모두 같은 얼굴의 석조상이지만, 사람들에게 받들어지면서 다른 얼굴이 됩니다. 부처님은 사람이 모시면 표정이 변합니다. ...지장상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 지장이 어떻게 모셔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에서 보듯,  物과 心의 상호 '개입'이 이미-언제나 미묘하게 만들어내는 착시이자 성취이지, 어느 한쪽으로의 일방적 '침입'이 아니다. ...관계의 일방성은 비현실적이며, 오직 사물과 인간 사이의 호혜로운 개입에 의해서 새 삶의 가능성이 싹튼다. ...사람의 삶은 그 근본에서 다양하게 이어지는 영접과 개입의 실천이다. ...우리는 부단히 만나며 응대하는 중에 이미/늘 개입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우리 일상을 채우고 있는 비근한 사물은 늘 괄시받는다.(이 역시도 이미 상호개입의 결과이자 증거다) ... 사물이 없거나 사물의 빛이 꺼져 있다면 인간의 삶도 제 몫을 다할 수 없다. ...사물의 유기적 총체는 '장소'로서 나타난다. 개개의 사물도 장소라는 삶의 낮은 연계성 속에서 제 자리를 얻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소는 긴 세월의 노동이 응집되어 인간의 무늬가 얹혀 있는 대표적인 곳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결국 사물을 통한 새 삶의 가능성은 장소감에 대한 새로운 사유와 실천을 요구한다. ...'사물-관련성'으로서의 장소, '장소-관련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다른 개입과 실천이 개인적으로, 혹은 연대의 차원에서 지속되어야만 할 것이다. ...얼굴에 나타나는 그 '마음'-풍경이란 그 집의 '장소'-풍경을 빼놓고는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인간의 진실은 오히려 생활이 머무는 장소에서 은근한 채로 더 역력해진다. 
(김영민 <동무론-신판> 544-546)

장소/사물과 상호개입하는 공부

김영민 선생님은 인간의 삶을 '장소-사물'과 '상호개입'하는 삶이라 설명합니다. 인간 단독으로, 사물 단독으로 일방적으로 '침입'하지 않는 것이지요. 장소는 주인을, 주인은 장소를 닮는 것입니다. 아니,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공부'이지요. 자연스럽게가 아닌 '가꿔나가는 데'에서 상호개입의 묘가 나타납니다. 마음의 상태와, 장소의 상태와 감응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인간 만이 무언가를 가꿀 수 있지만, 동시에 사물-장소가 인간을 움직입니다. 신비한 거 같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일리-공간도 수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경제적 토대인 '일리-공간'라는 일터와, 제 자신을 동일시하기에는 무리이긴 합니다만, 손님을 맞이할 수 있는, 동시에 제 자신의 지향과 취향을 차곡 차곡 축적해나가면서, 현재의 공간이 완성되어 가는 중입니다.(지금을 궁극적 완성이라기에는 더 발전시키고 싶은 욕심이 있답니다) 이 공간은 저라는 개인의 성향이 담뿍 담긴 공간이자 매순간 고민하게 만드는 구심점이며, 생존의 장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이루고 싶은 로망을 반영한, 제가 사랑하는 음악이, 책이 있는 그것들을 소중히 담아낸 삶의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손님들이 잠시 머물러 가기에 괜찮은, 한 숨 돌리기에 안심이 되는, 숨고르는 공간, 일리-공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