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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5

삶은 응하기 / 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7 우리의 주된 삶의 방식, 무엇보다도 살아가는 삶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응하기'입니다. 이웃들 혹은 타인들과의 온/오프라인의 버성김 속에 놓여서 살기 때문이지요. 심지어 혼자 있는 동안에도, 유튜브에 속한 타자와 버성깁니다. '홀로' 역시, '타인'의 해설이 있어야, '홀로'가 비로소 '고독'으로 의미화합니다. 그렇기에 가장 익숙하지만, 결국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보면, 타자에게 버성김을 뚫고 응하기는 어렵고도 어렵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응하기'는 그야말로 전부다. ...우주와 그 생명의 역사는 죄다 장구한 응하기의 과정이다. 응하기를 통해 그 실효를 얻는다는 것은, 곧 삶의 자리가 늘/이미 타자의 세속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愼獨마저도 (어떤) 타자(들)와의 대화다. 생각이 공부가 아니.. 2023. 5. 7.
소소한 구원 / 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6 구원을 '철학적 용어'와 '공부함'의 길과 관련시킵니다. 구원이라면 종교적인 냄새를 풍기는 데, 선생님께서는 이를 철학적으로, 더 나아간 비평으로 해석하십니다. 섣불리 돕는다는 착각으로 많은 것을 망쳐왔던 경험이 떠오릅니다. 사실, 이기적인 이유이고, 수작(?)부리려는 좀스러운 작전이었을 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입과 도움에 대해, 곧 선생님의 책이 나온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구원을 읽더라도, 제 삶에서 구원을 이룰 수 있을지는 참 요원해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냥 제가 맡은 이 공간을 가지런히 가꾸고, 바지런히 자료를 쌓아나갈 밖예요. 구원이라는 게 별스럽지 않다. 자기의식이 자신의 삶과 실천 속에서 완전히 녹아든 게 바로 구원의 징표다. 자기를 바라보는 자기의식이 소외되거나 스스로 버성기지 않으면 그것으.. 2023. 5. 4.
비평이라는 가능성 / 김영민 <산책과 자본주의> 2 마냥 에세이집이라고 알고 있던 김영민 선생님의 책의 서문을 보게 됩니다. 선생님께서 설명하는 비평의 의미를 같이 숙독해봅시다. 이게 제 할 말의 전부입니다. 이 매장의 존재이유이구요. ...문화비평은 일상의 낮은 자리로 스며든다. 그런 점에서 비평은 그 자체로 공부다. 공부가 아닌 비평은 부레처럼 뜨기 떄문이다. 습작이라는 기나 긴 발효의 시간, 그리고 그 발효가 마침내 내열을 숨기고 차분해졌을 때에 스타일이 생긴다는 고호의 말처럼, 이론의 열정을 묵히고 그 모서리들이 숙진 다음에 우리는 비평가의 눈으로 문화를 얘기할 수완과 지혜를 얻는다. ...문화비평은 일상의 정치성에 주목한다. 바로 거기에, 일상을 다루되 문학과 갈라지는 지평이 생긴다. 일상이 어떤 삶의 양식이라는 채널을 통해 진지화할지, 혹은 영.. 2023. 5. 3.
지혜라는 미래 / 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5 지혜는 솟아나는 '영감'의 발현과 비슷한 어감입니다. '솟아난다'는 표현에서 지혜의 이미지가 드러납니다. 무엇보다 여러 영상 매체에서 드러난 지혜의 모습은 '위태'롭지만, 국면을 전환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전쟁 영화에서 이런 지혜라는 이미지를 엿볼 수 있어요. 또한 현실과 타협하는 전략인 동시에, 불법과 합법 사이를 절묘하게 오가는 현대 드라마에서도 나타납니다. 무엇보다 성서에서 '솔로몬의 재판'에서 지혜의 모습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지혜는 무맥락적-무매개적 지식으로부터 '외출', 삶 속에 들어가는 비평적 실천과 함께 솟아나거나 쟁여진다.(그러나 결국 관건은 외출 그 자체가 아니라 외출한 이후에 다시 자신의 집으로 귀가할 수 있는가, 하는 데 있다.) 이미 지적했지만, 실천의 지평에서 동.. 2023. 5. 3.
이론Theory을 다룰 것 / 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3 공부함에 있어서, 이론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리고 사회가 좀처럼 좀먹어가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남의 기득권에게 마이크(매체의 주목)가 쥐어지기 때문이고, 물들어가는 한심한 개인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공부를 할 필요가 없고, 풍경만큼은 깔끔하고, 결핍 하나 없이 평화로우니까. 풍경에 가려진 것들을 보려 하지 않기에. 이론을 배우는 것은 (그 경험적 비용과 감가상각에도 불구하고) 느낌의 너머로, 감각의 너머로, 상상(직관)의 너머로 나아가 실제에 박진하기 위해서다. 이런 뜻에서 이론을 배우고 그 뜻ㅇ르 적용하는 것은, 修行의 과정에서 에고를 넘어가려는 실천과 닮았다. 무릇 좋은 이론이란, 개인이 자신의 경험역(經驗域)에 빠진 채 거기에서 생성된 직관적 표상들을 매개적 의심 없이 믿.. 2023. 4.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