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원래' 존재했었습니다. 삶에서 책이라는 고유 명사가 있기에 책이 무엇인가를 규정하지 않아도 됐었죠. 뿐만 아니라, 도서관과 의무 교육이 있는 한 책은 '고유 명사'로 '생활'로 다가옵니다. 그런 분위기 덕택에 책이라는 한 단어면 되니까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에 있어서, 선후 관계에 따라 논리 전개가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그렇기에, 책만큼 '사이의 존재'가 있을까 싶습니다. 공적이면서 상품이기도 한. 이런 상태에서 책방을 운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화두를 떠올리게 됩니다. '대여'가 생활로, 삶의 하나의 패턴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도서관이라는 공간 없이는 시작조차 되지 않았을 겁니다. '대여'서비스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은 아무래도 도서관이니까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중고등학교에 도서관이 없었습니다만, 지금은 중고등학교에도 작은 도서관이 생기고 사서교사도 확충되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렇기에 책은 대학생이 될 때까지 우리의 삶에 자리잡고 있지요. 이렇게 삶에서 책이 가까운데, 어떻게 '독서율 최하'라는 업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이렇듯, 시대가 달라지면서 책의 위상을 고민하게 됩니다. 소위 말하는 '종이' 책의 죽음의 시대에 도래했으니까요. 책을 사지 않고, 부수를 적게 내고, 절판이 빨라진 시기, 저는 이 상태를 책의 죽음이라고 감히 규정짓습니다. 평화의 상황에서는 딱히 뭘 할 필요가 없습니다만, 어떤 위기가 다가와야만 다음 스텝을 논의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위기가 닥쳐야만 궁리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니까요.
극단적인 시선으로 접근하자면, 도서관이 있기에 책방은 필요없어진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책은 그곳에서 보면 되니까요. 굳이 사지 않아도, 우리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도서관이 있고, 무엇보다 교통비만 있으면 수많은 도서를 도서관에서 직접 읽든, 빌리든 하면서 저렴하게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수많은 장서가 있는 도서관이 있는 데, 굳이 책방까지 필요가 있는가라는 극단적인 생각이지요. 도서관은 수많은 세월이 축적된 자료를 갖춘 문헌들을 통해, 그 권위를 얻고 신뢰를 얻습니다.
또다른 극단으로는, 책을 상품으로만 규정하면요. 도서관의 존재 이유가 애매합니다. 굳이 상품을 국가 돈으로 사서, 보존비를 우리의 세금으로 내야한다는 것입니다. 상품을 국가돈으로 굳이 사서, 굳이 비치합니다. 상품은 맘에 들면 개인돈으로 그냥 사면 되는 데 말이죠. 굳이 세금을 써가면서, 상품 소개를 하는 공공 장소를 만들어야 하나 이런 삐딱한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생각들은 그냥 극단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도서관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책 하나로만 도서관을 규정할 수 없구요. 그래도 여전히 책의 존재가 다소 애매해보입니다. 공공재와 상품 사이에서 존재하기에, 이것으로 어떻게 수익을 내는가는 다른 문제겠지요. 만화책 대여점도 없어진 시대, 책으로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책'을 팔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온라인으로 사는 게 편하다 보니, 굳이 책방에 들르는 품을 팔아야 하는 생각도 듭니다. (구독 플랫폼이 나와서, 책의 새로운 판매 방식이 생겼는 데, 본글에서는 다루지 않습니다.) 동시에, 책은 굳이 살 필요가 없는 공공재이기도 합니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관계와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도 듭니요. 공교육이 있는 데 굳이 사교육을 받는 것과도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사교육과는 달리 그래도 '책을 읽는 게 좋고, 사는 게 좋습니다'라는 단순한 논리로는 이 시대에 '황당무계'하게 들릴 뿐입니다. 책방과 도서관, 책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여전히 명확한 돌파구가 없는 질문을 던지며 글을 마무리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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