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에서 나온 꿀팁이 하나 있었습니다. 저자가 말한 꿀팁인데, 연계해서 읽을 것을 추천한 책이지요. 바로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입니다. 사고 나서 한참 지나고서야 알게 됐습니다. 좋은 책이라고 충동구매했지만, 묶음이었다는 것은 사고 나서 2년 정도 지나서야 알게 됐지요. 나름의 변을 하자면,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가 우리나라에 더 일찍 번역이 됐습니다. 2년 후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이 번역됐지요. 일본에서 두 책의 출간년도가 같습니다. 두 나라의 출판이 된 시점의 차이가 있어서 생긴 것이지요(라고 변을 합니다).
북랩 일리는 '묶는' 것을 좋아합니다. 책방 대표의 할 일은 아무래도, 잘 분류해내는 것, 분류를 소개하는 것, 각권을 소개하는 것을 하기 때문이지요. 무엇보다 독자들의 충동구매를 곁들인... 농담이구요. 독자님들의 책 구입은 제 생존과 번영에 큰 도움이 됩니다만, 무엇보다 '좋은 책'이 무엇인가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저도 저만의 아집에 갇힐 때가 허다하거든요. 저의 편견을 산산조각내고 재조립하는 과정 중에 있는 책방 일리입니다.
아, 21세기의 책방이라니 아날로그+구형인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기술의 수혜를 받고 자라난 세대입니다. 굳이 레트로를 지향하지도 않고, 적절히 기술을 활용하는 게 일상화된 세상 속에 꼭 맞게 수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책이라는 기술을 활용하고, 의미를 음미하는 기술의 첨단 그것은 책입니다. 우치다 선생의 문장을 같이 보면서, 책이란 무엇인가 같이 그의 시선을 공유해봅시다.
실은 독서는 '지금 읽고 있는 나'와 '벌써 다 읽어버린 나'의 공동 작업입니다. ...다 읽고 난 나가 보증인이 되어주기 때문에 지금 읽는 것이 가능합니다. ...읽고 있는 나와 다 읽은 나는 모래밭 양쪽에서 굴을 파는 두 아이와 같습니다. 계속 파 들어가는 사이에 점점 맞은 편에서 굴을 파는 상대방의 손이 가까이 오는 것을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얇은 모래벽이 무너지면 손과 손이 만나고 바람이 훅 통합니다. (64)
색다른 접근입니다. 저는 그동안 근성으로 읽는 나, 근성이 약해서 다른 책으로 옮겨타는 나라는 인간을 재확인하는 과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는 가끔씩의 포텐이 터지는 그런 인간입니다. 변덕꾸러기이지요. '내일의 나'에게 맡기는 게으른 '현재의 나'는 책에서 만납니다. 사실 이 책이 좋다고 느끼는 부분에 있어서, 그 직관은 그 책의 지향+내일의 나가 공동으로 작업하는 거 같습니다. 기독교적인 종말론적 접근(세대주의처럼 막 휴거하고 그런 개념 절대 아닙니다)이지만, 이미 다 소통이 끝나서 '재확인'하는 차원의 책읽기인 것이죠.
전자책의 독서에 깃든 곤란한 점은 '다 읽은 나'의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몇 페이지가 남았는지 모르니까요. ...물론 디지털 표시로 몇 페이지 남았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우리는 페이지를 일일히 체크하면서 '이제 몇 페이지가 남았으니 읽는 방식을 바꾸어야겠군'하는 귀찮은 방식을 취하지 못합니다. 실제로는 손으로 받쳐든 책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감촉이나 무게감, 손바닥 위의 균형 변화 같은 요소, 즉 주제의 측면에서는 의식하지 못하는 시그널에 반응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읽기 방식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것입니다. 이 작업은 지나치게 섬세해서 책을 읽는 자신도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미처 깨닫지 못합니다. (65)
김나박이의 구성원(?)인 나얼 교수님이 제자들을 가르칠 때 하는 말이 있답니다. '물질로서의 음악'을 느끼라고요. 즉, 음반이라는 형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죠. 저 역시도 이 말을 듣고 조금 참회같은 것을 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책도 그렇습니다. 책이라는 고리타분함을 누가 그렇게 낙인을 찍어 놓은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한 건 그러면서 이득을 취하는 사업가라는 사실에는 변하지 않습니다. 전자책은 하나의 수단이고, 전자책에 합당한 장르가 있겠지요. 그럴 때 전자책을 읽으면 될 일입니다. 그렇지만 종이라는 무게감과 촉감으로 읽어야 될 책도 분명 존재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의 책을 정복했다는 성취감만큼, 촉감, 냄새, 디자인, 중간 중간 확인하는 몇 페이지 남았지하는 감각의 비중도 만만치 않게 큽니다. 첨단 기술과 마케팅 기법은 멀리 있는 게 아닙니다. 순간의 감각과 쾌락을 알아채는 데서부터 시작이니까요. 그러니 아이패드의 종이질감의 화면보호 스티커가 나오잖아요. 결국 튜팅의 끝은 순정인 것처럼 돌아온다니까요.
"우리는 책을 읽을 때 그저 정보를 손에 넣기 위해서만 읽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을 때 가슴이 뛰는 느낌은 무의식중에 '쾌락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느껴지는 것입니다."(68)
"책방 안을 어슬렁거리고 있으면 '책과 눈이 맞는' 일이 있습니다. 저자 이름도 모르고, 내용도 모르고, 서평도 읽지 않았는데 '책과 눈이 맞는' 일이 일어납니다."(68)
"책이 내보내는 물질성입니다. 좋은 책에는 좋은 책에만 있는 힘이 있습니다. 작가가 온힘을 다해 글을 쓰고, 편집자가 온힘을 다해 편집하고, 표지 디자이너가 온힘을 다해 표지를 만들고, 영업사원이 온힘을 다해 영업을 하고, 서점 직원이 온힘을 다해 책을 배치합니다. 그런 책에는 책장에 꽂힐 때까지 경유해온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아우라를 띠는 것입니다."(68)
"독자는 이름바 소비자가 아닙니다. 소비자는 어떤 의미에서 훨씬 더 공격적입니다. 눈을 부릅뜨고 조금이라도 비용 대비 효과가 좋은 상품을 발견하려고 혈안이 됩니다. 그러나 서점을 유유자적 거니는 사람은 그렇게 눈을 부라리고 찾아다니지 않습니다. 훨씬 수동적입니다. ...보통 책방에 들어가는 경우는 목표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74)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에 모든 인간은 '소비자'가 됐습니다. 의미있는 소비를 한다하도 결국 소비자라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소비자. 그리 부정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소비자의 권리라는 게 분명히 명시되어 있기에 소비에 있어서 분명한 권리가 주어져 있기에 그렇습니다. 마지막 문장에서는 절반정도 공감이 됐습니다. 목표를 가지고 책을 사러 가고, 그만한 체력을 갖춰놓습니다. 그러나 결국 길을 잃고 충동구매를 합니다. 목표는 온데 간데 없고, 까먹어서 다음 날 또 가서야 목표한 바에 맞춰 책을 삽니다. 생존을 위해 놀러다니는 시대, 그래도 조금 더 멘탈이 딴딴해지기 위해서라도 책방에 다니시는 습관을 들이십시다. 적어도 그 과정에서 책이 고상하고 매니악한 취미라는 편견, 책이 구식이라는 편견만 극복되도, 지구에서의 팍팍한 삶은 조금이나마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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