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코너를 만들어보게 됐습니다. 공부 다하고 나서, 컴퓨터 틀자마자 어머니가 방문하는 상황. 익숙합니다. "방금까지 공부했어! 진짜야!!!!" 그리고 어머니의 호통 "저거 또 입에 침도 안바르고 거짓말하는 거 봐!!" 이어 잔소리가 뇌간에, 심장에 꽂힙니다.
오늘의 코너는 아이유의 <잔소리>랑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인간은 어머니의 잔소리를 먹으면서 자라나는 존재입니다. 더 나아가 아버지의 무관심을, 배우자로부터의 갈굼을, 친척들의 잔소리를 먹고 자라납니다. 듣기는 성가시지만, 틀린 말 하나 없습니다. 모두 다 잘되라고 하는 말이거든요. 저도 공부에 대해 다루려다가, 공부에 대해 논하는 것 자체가 잔소리라는 생각이 들어 제목을 이렇게 달아보았습니다. 다 여러분 잘되라고 하는 소리라고, 무던히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찾아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요. 오늘의 주제는 공부의 길, 공부를 어떤 방면으로 하는 게 좋은가에 대한 잔소리입니다.
오늘날의 공부는 마음-공부와 더불어 반드시 체계- 공부를 병행해야 한다. 문사 개인이 흡수하는 지식도 체계 속의 것이며, 개인의 열정과 냉소는 결국 체계적 모방의 메커니즘에서 벗어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모방의 유무는 아예 이슈가 아니다. 살아 있는 자라면, 특히 공부에 뜻을 둔 자라면, 그 누구나 모방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모방의 방식, 그리고 모방에 대한 태도 속에서 드러나는 공부의 모습이다. (김영민, <공부론>, 44)
공부는 수능-대학교-대학원까지입니다. 학위 과정을 이수하는 것, 어떤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공부라고 흔히 생각합니다. 효용이 있는 것들이니, 그런 것들이 공부라고 불릴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요. 공부는 '마음'에 관한 것이며, 우리의 삶을 이루는 사회 즉, '사회 시스템(체계)'에 물들었음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지식 자체도 결국 사회적 합의이기에, 사회의 시스템을 알아가야 하거든요. 즉, 지식이라는 형태 역시 사회 체제를 '모방'이 기반이 되는 형태입니다. 하지만 결코 모방이 목적이 될 수는 없지요. 모방에 관한 '태도'의 문제입니다.
...무릇 공부를 하는 지, 물듦을 피할 수 없다. ...물듦을 피할 수 없다면, 그 바로 그 한계를 조건으로 승화시켜야 하며, 물듦의 조건을 슬기롭게 헤아려 근기 있는 실천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익사의 공포를 품고 범람하는 강물 속에 몸을 던지며 피안을 향해 한 획 한 자락씩 내 몸으로써 나아가는 길이 공부의 요체다. (김영민, <공부론>, 48)
아주 멋진 문장입니다. 이런 식으로밖에 표현 못하는 것은 제 한계입니다. '물듦', 우리는 늘 물듭니다. 학창 시절 자체가 물듦의 시절입니다. 온갖 것들에 물들어버립니다. 성인 되어서야, 그때의 시절을 비로소 되돌아보게 됩니다. 혹은 타고난 이들은 성인이 되기 전부터 찬찬히 성찰하기 시작합니다. '성찰' 자체가 타고난 능력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무의식적으로 어디에 물들었고, 어쩌다가 물들었는가 한탄하다 차곡차곡 물들었던 물을 빼냅니다. 얼추 털어내고, 범람하는 공부의 강물 속에 뛰어들 준비를 합니다. 하지만 망설입니다. 서성이고, 망설이다 이내 눈을 딱 감고 뛰어듭니다. 물든 나는 강물과 하나가 됩니다. 호흡기를 휘감는 강물의 흐름을 거슬러, 살 궁리를 격랑 속에서 합니다. 말 뒤에 숨는 것이 아닌, 격랑 앞에 존재로 승부하는 것, 공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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