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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一理, 공간空間의 말/일리一理, 음-락(音-樂) 시스템

세계관 맛집(1)-ID:PEACE B와 에스파

by 一理ROASTERS 2021. 10. 21.

SM 엔터테인먼트가 당시 사활을 걸었다던 보아입니다. 국내에서보다 일본에서 크게 성공해서 금의환향했습니다.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가요계의 레전설이지요. 오른쪽은 에스파와 4명의 가상 아바타입니다. 그래서 8명의 멤버입니다. 피스비와 보아가 동일하지만 다르듯.

에스파(AESPA)라는 아이돌이 대세입니다. 이번년도에 낸 3곡 모두 1위를 차지할 정도니까요. 에스파는 8명의 멤버(?)입니다. 4명의 멤버+광야 세계관 멤버 4명=8명이 되는 기적의 계산법입니다. 여전히 이해가 안됩니다. 왜냐면 광야의 4명은 노래를 부르지 않거든요.

어쨌든 SM은 SMCU(SM Culture Universe)라는 용어를 표면에 드러냄으로 세계관에 특화된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오컬트같은 느낌과, 사이버 펑크(?)같은 의상 코디 등에 신경을 많이 쓰는 느낌입니다. SM을 대표하는 아이돌들만 돌아보더라도 인터넷 세계, 현실 세계라는 두 세계 속에 놓여있는 인간의 상황을 잘 짚어냈지요. 해당 소속사의 시대 안목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그때의 세계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물론 공식 발표는 아닙니다만, 추정하고 상상하는 것은 쓰는 사람 자유잖아요.

보아의 데뷔곡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다른 세계의 시작점은 아무래도 피쓰비니까요. 제목부터 ID가 붙어있습니다. 굉장히 앞서 나간 케이스라고 볼 수 있지요. 피스비의 가사를 살펴볼게요.


가상 현실 속에/의미 없는 상자 속에/갇혀서 살아가지 말라
...
난 내 세상 있죠/Peace B is my network ID/우린 달라요 갈 수 없는/세계는 없죠/하나로 담긴 세상/connecting in my neverland

보여지는 것이 나의 전부라고/말도 하시겠죠 그게 다가 아닌데도/우리만의 언어 우리만의 표현들로/
가득 찬 우리만의 세상/그 속에는 나와 같은/꿈을 꾸는 친구가 있죠/평화로운 세계 속에서


서로 많이 다른 것도 이상할 게 없죠/세대 차이 뿐인 걸 그게 뭐가 어떤가요/
예전부터 우린 모두 하나인 걸/나를 믿어 보세요


-보아의 데뷔곡 <ID:Peace B>(2000)-

보아가 나올 당시에는 10대 소녀였습니다. 당연히 소녀의 패기에 걸맞는 어른들의 가당찮은(?) 충고에 넌지시 반항합니다. 당시 인터넷은 천리안, 넷츠고, 나우누리...등이 활개치던 시대였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위주로 돌아가는 너와 나의 세계였지, 나만의 세계는 아니니까요. 근데 피쓰비는 굉장한 게, '내 세상'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노래의 화자와 인터넷 세계의 자아가 하나인지 둘인지는 알 수 없지만, 화자는 현실 세계의 자아입니다. 세대 차이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를 내는 피스비의 현실 자아입니다. 하지만, 피스비는 '우리'의 평화로운 세계 속에 머무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현실의 피스비는 한국에서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가상 세계로 음악이 만들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다른 세계관의 확장판, 아틀란티스 소녀입니다. 굉장히 이국적인 느낌의 곡입니다. 푸니타의 리메이크 버전도 꽤 좋습니다.

 

저 먼 바다 끝엔 뭐가 있을까/다른 무언가 세상과는 먼 얘기/
구름 위로 올라가면 보일까/천사와 나팔 부는 아이들

숲속 어디엔가 귀를 대보면/오직 내게만 작게 들려오는 목소리/
꿈을 꾸는 듯이 날아가 볼까/저기 높은 곳 아무도 없는 세계

그렇게도 많던 질문과/풀리지 못한 나의 수많은 얘기가/
돌아보고 서면 언제부턴가/나도 몰래 잊고 있던 나만의 비밀

(이제 정말) 왜 이래 나 이제 커버린 걸까/(이제 정말) 뭔가 잃어버린 기억/
(지금 내 맘) 이젠 나의 그 작은 소망과

꿈을 잃지 않기를 저 하늘 속에 속삭일래/
까만 밤하늘에 밝게 빛나던/별들 가운데 나 태어난 곳 있을까/
나는 지구인과 다른 곳에서/내려온 거라 믿고 싶기도 했어

너무나도 좋은 향기와 바람이/나에게로 다가와/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가만히 들려오는 작은 속삭임/귀를 기울이고 불러보세요/다시 찾게 될 거예요 잊혀진 기억

(생각해 봐) 나 이제 더 이상 놓치진 않아/(소중했던) 나의 잃어버린 기억
...꿈을 잃지 않기를 저 하늘 속에 기도할래

-보아의 3집 타이틀 <아틀란티스 소녀>-

 

저는 학창 시절 나온 아틀란티스 소녀가 그냥 환상의 세계를 그린 거구나 생각했었고,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형상화한 노래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근데, 평화로운 피스비의 세계와 맞닿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틀란티스라는 상징 자체가 미지의 세계를 뜻합니다. 고대의 세계의 웅장함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의 첨단 기술도 갖추고 있는 세계를 상징하는 단어이지요. 피스비의 세계를 실감나게 그렸다고 봅니다. 자연광경, 화자 아틀란티스 소녀는 환상의 세계를 인지하면서도 커버린 현재와 충돌합니다. 현실의 소녀가 카를 융의 '원형' 이론에 맞추어 자신의 아키타입을 찾는 과정입니다만, 결국 그 끝은 기도라는 형태로 꿈으로만 끝나버립니다. 어른이 되었기에 지구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며, 아틀란티스에는 그래서 도달할 수 없으니까요. 아틀란티스가 환상이자 허상의 세계니까요. 결국 피스비의 현실자아와 아틀란티스 소녀라는 원형은 합쳐지지 못하고, 기도라는 형태로 끝나버립니다.(라고 제가 해석했습니다.)

 

https://youtu.be/vbH4Lk5wYWg

https://youtu.be/PtFnieJ7Imc

그렇게 십수년이 지났습니다. 2021년에 SM의 야심작 '에스파'가 등장합니다. SMCU가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에스파의 세계관은 ‘현실 세계’의 에스파 멤버와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아바타 멤버가 교감하는 세계입니다. 현실과 가상의 중간 세계인 ‘디지털 세계’를 통해 소통하고 교감하는 세계입니다. 노래를 보면, 구성이 다채롭습니다. 익숙한 음에서 끝나지 않고, 이질적인 파트가 섞여 나옵니다. 마치 한 편의 대서사시같은 인상을 줍니다. 혹은 뮤지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황급하게 결론으로 점프합니다. 제가 봤을 때, 피스비는 SM 세계관의 시초라고 봅니다. 피스비의 현실 자아는 결국 어른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제국'의 피스비는 여전히 살아남아서, 광야 세계관을 만들었고 피스비의 현실 자아가 잠깐이나마 희망을 품었던 가상 자아와 현실 자아의 일체화의 욕망을 이어받았습니다. 에스파 세계관에서도 SYNK라는 기능이 나오니까요. 가상 세계의 남은 피스비는 아틀란티스 소녀이며, 아틀란티스가 에스파의 세계관에 나오는 광야와 겹칩니다. 이제 피스비의 세계관이 정착이 된 것이죠. 에스파를 통해. 근데 피스비가 있었던 세계와는 사뭇 다른 곳입니다. 블랙 맘바라는 위험이 도사리는 세계로 변해버린 것이죠. 그런 위험이 있는 곳에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다리를 놓으려는 피스비, 어른이 됨으로써 기도의 응답으로 정착한 아틀란티스 소녀는 수호자 나이비스입니다. 아틀란티스 소녀와 피스비의 소망은 같았습니다. 그 소망은 시대가 지나 관리자 혹은 절대자 나이비스로 진화하여 가상의 세계를 지키고 있지요. 현실과 가상 세계에 다리를 놓는 더 나아가 일치시키려는 검은 야욕(?)을 가진 나이비스는 재앙이 될까요? 희망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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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경전 성경의 '구약'에는 광야가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떠돌았던 기억을 회상합니다. 구약에서의 광야는 기회의 땅으로 가는 개고생의 여정이 그려집니다. 결국 광야를 떠돌던 모세와 1세대 이집트 탈주자들은 약속의 땅으로 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야속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광야는 거의 공허의 공간이고, 신이 못난 인간을 먹여 살리는 역할을 합니다. 아마 모세의 역할을 나이비스에 대입하고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