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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一理-읽기/책 그리고 패턴

읽는 노동, 읽는 실험 1/ 엔터테인먼트로서 책은 구리다

by 一理ROASTERS 2022. 1. 29.

"책은 여러 방식으로 죽는다. 끝까지 팔리지 못한 책은 제지 원료로 쓰이거나 팔다 남은 책을 담아두는 궤짝에 초췌하고 볼품없는 모습으로 남겨진다. 아니면 보나마나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출판되지 않는 책들도 있다. 또한 지하실 창고에 물이 범람하는 바람에 몽땅 젖어버려 폐기 처분되는 책들도 있다. 이런 죽음들은 모두 책의 물리적 형태 때문에 생겨난 결과다. ...결국 책을 물리적 형태에서 떼어내야만 책이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셔먼 영 <책은 죽었다>, 13

 

역설적이게도 저는 책은 죽었다라는 책을 인쇄된 책의 형태로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은 2006년도에 번역된 책입니다만, 오히려 상황은 그때보다 더 악화된 거 같습니다. 책을 볼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책을 볼 수 있고, 접할 수 있는 곳. 광화문도 있겠지만, 뭐랄까 그렇게 넓어도 수많은 책이 있기 때문에 공급을 모두 할 수 없지요. 일단 그런 글은 예전에도 쓴 거 같으니 패쓰하겠습니다. 21세기 들어 각광받는 사업이 느는만큼, 사양산업도 늘어만 갑니다. 그중 하나가 악착같이 버티고 있는 산업, '책'입니다. 이 책은 책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난제도 다루고 있습니다. 

 

"현재 출간되는 책들의 상당수는 5백 년 역사를 지닌 진짜 책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책들은 '사상'을 탐구하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대화를 촉진하는 문화, 이른바 '책 문화'에 낄 수 없는 것들이다. ...지금도 여전히 책이라는 이름을 달고 여러 가지 유사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인간성을 갈고 닦도록 이끌어왔던 책만의 독특한 가치는 점차 퇴색되고 있다. 책은 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지만 결코 대중매체는 아니다. ...책이란 가장 내밀하고 특별한 영역이다. 결국 지난 30여 년간 인기만을 좇는 대중매체 흉내 내기에 급급했던 출판 산업이 책을 죽인 셈이다."
셔먼 영 <책은 죽었다>, 19
"진짜 저자가 누군지도 모르는 운동선수의 자서전에는 눈길도 주지말고 유명 인사의 요리책이나 영화 개봉에 맞춰 곁다리로 끼워 파는 책들도 거들떠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각종 자기 계발서나 이런 저런 재테크 책에는 아예 손도 대지 않는다. 이것저것 빼면 사실 살 책이 별로 없다."
셔먼 영 <책은 죽었다>, 20

저자가 생각하는 책은 명확합니다. 고전, 그리고 대화의 촉진입니다만,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책이 아닌 것의 범주에 '자기계발서', '재테크' 도서도 다룹니다. 16년이 지난 지금에도 잘 팔리는 영원불멸의 '장르'이지요. 제가 10대때나 20대, 30대가 되어서도 이런 장르는 꾸준히 잘 나가고, 포스팅도 블로그에도 자주 올라오는 단골 장르들입니다. 10대때의 멘토로는 이회창-공병호-빌게이츠, 20대때는 스티브잡스-안철수-박경철-이지성-해민, 30대에는 오은영-양씨 형제-조던 피터슨-홍준표-이준석이 있겠네요. 그때는 열심히 읽었던 책들이라 메인이 되는 저자들은 기억이 나긴 합니다만, 30대가 된 지금에서는 누가 유명하고 영향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책은 20세기 말에 멀티미디어 제국들이 전 세계를 장악하기 시작하자 아예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컴퓨터가 기반이 되는 소통 방식과 사회적 조직망 그리고 획일성에서 벗어난 새로운 창의성이 제 역할을 한다면 사상의 중요성이 재인식될 수 있다. ...우리는 낡은 방식에만 필사적으로 매달릴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찾아온 기회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24)

 

30대에 들어서, 책의 다양한 저자들이 미디어에 나오기 시작했거든요. 그전에는 한정된 패널이었고, 어떤 출판계 흐름(베스트 셀러)과 티비 프로그램(힐링캠프 등)이 상호작용했다면, 지금 시대에는 티비 프로그램이 먼저 출판계를 주도하는 느낌입니다. 이미 베스트 셀러의 저자들이 패널이 되고, 오히려 베스트 셀러임을 공고히 하는 시대가 된 거 같습니다. 순수 작품으로만 각광받는 시대가 이미 지나버린 느낌입니다. 문학 작품에 있어서도, 작품이 주목받는 경우를 점점 찾기 힘들어진 거 같습니다. 그래도 눈에 띄는 것은 아무래도 '고전 리커버', '구독'이라는 흐름이겠죠. 그런데요. 구독이라는 거 잘 몰랐는데, 90년대에도 있었습니다. 영어 동화라든지, 문학 작품이라든지 보내주는 서비스가 있었다고 하네요.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독서는 학교 수업의 연장서에 있거나 일종의 일처럼 간주된다. 독서가 즐거움이 아닌 허드렛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책이 몰락했다고 해서 읽기 자체가 끝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신문과 잡지들을 읽기 때문이다. 비디오게임을 하기 위해 게임방법이 적힌 안내문을 읽고, 웹사이트 역시 텍스트가 주를 이룬다. 그래서 사람들은 웹사이트와 블로그, 채팅방에 들어가 열심히 무언가를 읽는다. (34)"

보통의 대한민국 국민에게 제도적으로 접하는 책의 역사는 이렇습니다. 초중고 시절에는 교과서(저 때는 교내 도서관이 없었을 시절입니다...), 대학교 교재, 대학원생이 흔해진 지금 시대에는 에세이 제출용 도서, 졸업 후 방치까지겠습니다. 여기서 교수가 되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책을 끊임없이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업이 된 상태에서는 책과 가장 가까운 직업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삶에서 '제도적'으로 책을 접할 기회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대학 이후에는 '자발적'이라는 데서, 그 차이를 볼 수 있겠습니다. 그 자발성 하나 얻기가 힘듭니다. 다양한 책을 읽는다는 것도 무척 어려운 과정이라는 것, 혹은 도달할 수 없을만큼 불가능한 작업일 수 있다는 점도 더 체감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산업화 시대~ 90년대 말까지, 개신교 쪽에서는 '성경'을 통해 '책'의 감각을 익힐 수 있는 곳이겠습니다. 어쨌든 경전이 비치되어 있고, 소속 교인들이 경전을 들고 종교 공간으로 향하지요. 그런 측면에 있어서, 종교도 책과 친해지거나, 멀어지거나 하는 장소일텐데 제 경우에는 오히려 책에 대한 거부감만 가졌습니다...... 가족들과 같이 보는 티비 프로그램, '신문-언론 매체'을 통해 책을 접하게 됐지요. 지금 시대는 유튜브 플랫폼의 '북튜버', 인스타그램 플랫폼의 '북스타그램' 정도가 삶에서 책을 접할 수 있는 영역이 추가됐지요.
책과 만날 수 있는 물질적이자 '타의적' 환경이 이럴진대, 자발적 측면에 있어서 책이 먼저인가 관심사가 먼저인가가 궁금하긴 합니다. 굳이 그 책을 사는 목적, 그 책의 장르를 좋아하는 이유 등등을 심층적으로 살펴보아야 하지만, 반영할 수 있는 장은 없습니다. 책을 물질적으로 접할 수 있는 환경은 보편적으로 이렇습니다. 

지금은 이북이 생겼습니다. 스마트폰 화면에 맞게 비율도 조정이 되는 최첨단이지요. 이제는 독서 모임에서도 이북을 쓰는 게 익숙합니다. 연예인이 감미로운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서비스도 생겼지요. 이제는 인쇄물로서 책보다는 '컨텐츠'로서의 책이 익숙해진 겁니다. 책의 개념이 달라진 것이죠. 컨텐츠로서요. 그렇지만 이런 위험성도 있습니다. 불법 피디에프 복제본을 공유하든가 합니다. 이걸 공유받으면 되서 더더욱 책을 살 필요성을 못느낍니다. 그렇기에 출판시장에 타격을 입히면서, 빨리 절판되어 버려 책은 더욱 사기 어려워졌습니다. 

제가 주로 책을 구입하는 장소는 헌책방입니다. 지금은  중고매장을 가지요. 무엇보다도 틈날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새로이 들여온 책을 체크할 수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즉, 책을 사기 위해서는 서치하는 습관이 필수이고, 그것때문에 갈 이유가 생기는 거죠. 아낌없이 소비도 하구요. 근데 이것도 매니악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