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철학적 용어'와 '공부함'의 길과 관련시킵니다. 구원이라면 종교적인 냄새를 풍기는 데, 선생님께서는 이를 철학적으로, 더 나아간 비평으로 해석하십니다. 섣불리 돕는다는 착각으로 많은 것을 망쳐왔던 경험이 떠오릅니다. 사실, 이기적인 이유이고, 수작(?)부리려는 좀스러운 작전이었을 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입과 도움에 대해, 곧 선생님의 책이 나온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구원을 읽더라도, 제 삶에서 구원을 이룰 수 있을지는 참 요원해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냥 제가 맡은 이 공간을 가지런히 가꾸고, 바지런히 자료를 쌓아나갈 밖예요.
구원이라는 게 별스럽지 않다. 자기의식이 자신의 삶과 실천 속에서 완전히 녹아든 게 바로 구원의 징표다. 자기를 바라보는 자기의식이 소외되거나 스스로 버성기지 않으면 그것으로 좋다. 이론과 함께 이론을 넘어, 삶과 세상 속으로 지혜롭게 개입하는/응하는 실천이 열매를 맺을 수 있으면 그게 곧 구원이다. 이 열매의 핵심은 '돕기'이며, 그 모든 공부와 수행의 유일무이한 형식은 옺기 '당신은 타인을 도울 수 있는가?'로 귀결한다. ...도울 수 없다면, 그것은 아직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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