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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一理, 공간空間의 말/일리一理, 영감 출처

음악은 복잡하다

by 一理ROASTERS 2021. 9. 24.

0. 서론

우리는 음악을 음원으로 접합니다. 음원을 녹음된 그 순간, 음악가 곁에서 직접 들을 수 없기에 녹음이 됩니다. 그 녹음된 것 저장되고, 그 저장된 것들을 복제 및 상용화된 이후에야 시장에 나와야 들을 수 있습니다. 시장에서 음반을 사는 것으로 끝이 아니지요. 음반을 판매하는 음반 매장, 음반을 재생하기 위한 재생기기를 또 구비해야만 했습니다. 그 재생기기는 어찌나 많던지요. 음악을 접근하기까지는 아티스트의 역량이 전에는 크게 부각이 됐다면(그것도 소속사의 마케팅+방송사의 띄워주는 연출도 분명히 있었지요), 지금은 마케팅과 스트리밍, 익숙하게 만드는 무한재생에 있습니다. 이에 따라 후크송이 각광받게 됐지요. 미디어의 변화에 따라 음악의 장르도 변해갑니다. 또한 음반 판매량이 주된 평가 척도였다면, 지금은 스트리밍 사이트의 재생 시간과 음원 다운로드 횟수를 통해 평가되는 시대가 됐습니다. 음반도 아니고, 소속사도 아니고(소속사는 판매자인데 당연하지!),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가 그 평가의 기준을 가져갔다는 씁쓸한 현실(?)입니다.

 

1. 하드웨어적 측면

0) 음반 판매점

음원을 수입하는 수입사, 아티스트 소속사의 판매 전략의 영향이 강했습니다. 방송을 통해 화려하게 연출하고, 라디오로는 하이라이트 부분을 재생해서 광고하니까요. 그리고 당시에는 음반만 파는 음반 매장이 동네마다 있었습니다. 그당시 음반 매장은 고수익의 매장이었습니다. 몇십만장 음반 판매 기록은 이들이 동네마다 존재했기 때문이지요. 컴퓨터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서 급격하게 쇠락했으며 지금은 몇만장 판매도 힘들어졌습니다. 지금은 핫트랙스 정도 남아있지요. 

 

1) 휴대용 플레이어와 집에서 쓰는 카세트+cd 플레이어

 

제 음악 청취 경력이 초딩 때 포함해서, 약 20년이 좀 넘습니다. 그전에는 저렴했기 때문에 카세트 테이프를 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아하는 음악가를 만났을 때는 시디 구매를 했었죠. 시디 플레이어를 알아보고, 그당시에는 15만원~20만원 되는 휴대용 시디플레이어를 샀고, 대형 마트에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후줄근(?)한 카세트+cd플레이어를 구매하곤 했습니다. 굉장히 행복했었죠. 제 방에서 음악듣는 소소한 즐거움이 생겼으니까요. 당시 워크맨도 굉장히 비쌌습니다. 아버지가 주로 출근길에 쓰시던 것을 퇴근할 때 뺏어서 듣곤 했습니다. 건전지도 굉장히 빨리 달았구요.

 

2) 디지털 음원 시대의 음악을 위한 하드웨어 MP3

그래도 당시에는 MP3라는 형태, 그리고 MD로 음원을 직접 녹음+저장하는 음악 기기도 있었습니다. 당시 mp3 플레이어가 막 태동하던 시절에 음원을 저장하고 삭제하고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는 것은 혁명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아버지가 당시 큰 맘 먹고 저희 형제를 위해 돈을 땅에다가 버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16+16 총 32메가 정도밖에 넣지 못했습니다. 지금 보면 참 적은 용량인데, 그때도 적은 용량이었습니다. 그때는 음원당 약 4메가 정도 됐었는데, 더 많이 넣으려고 구린 음질의 음악을 들었지요. 뿐만 아니라, 그때는 프린터 포트를 이용해서 파일을 옮겼습니다. 시간도 꽤 걸렸어요. 32메가를 채우는 데 있어서.... 이후에 128메가->8기가->16기가의 플레이어로 발전했습니다. 당시에 각광받던 브랜드는 '아이리버'였고, 이 아이리버를 추격하기 위해 삼성에서도 엠피쓰리 플레이어를 출시했었어요.

 

2. 소프트웨어적 측면(모뎀에서 랜선시대로)

1) 커뮤니티를 통한 신문물 도입

인터넷 음악 커뮤니티는 모뎀 시절부터 있었습니다. 그리고 랜선으로 전환되어갈 무렵, '인터넷 카페'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진귀한 음악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보면, 바다건너 물건너 국내 음반으로는 구할 수 없는 것들을 구해오고, 각국 언어를 하는 사람을 통해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사는 이들이 비디오로 녹화하고, 디지털 마스터링 작업을 통해서 영상도 올라오던 시절이었거든요. 그런 선구자들 덕에 세계 각국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였던 공간이 인터넷 카페였으니까요. 그들의 고생 덕에 손쉽게 음악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당시에는 유튜브가 없는 시대였습니다.) 그닥 좋은 화질의 뮤비를 굳이 올리겠다고, 저화질로 인코딩해서 올리는 노력도 필요했던 시대였습니다. 즉, 선구자들에 의존했던 시대였습니다.

 

2) 스트리밍 서비스 및 음원 공유 프로그램의 등장

2000년쯤인가? 스트리밍 서비스를 처음 접해본 거 같습니다. 벅스 뮤직+소리바다라는 음원 공유 프로그램을 통해서,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 당시 신문사에서 광고(?)스러운 기사로 이들을 접했고, 그대로 활용했습니다. 지금 보면 마케팅이었네요. 그때부터 사이버 공간의 마케팅 시대였었던 거 같습니다. 아, 이게 아녔지... 그러나 적어도 저는 음원이 테이프 형태나 시디로 나오던 형태보다 스트리밍이 굉장히 편했습니다. 스마트폰이 정착이 되면서, 이제는 엠피쓰리도 필요가 없게 됐죠. 저는 꿋꿋이 들고 다녔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습니다. 

 

3) 스마트폰이라는 하드웨어의 등장으로 인한 변화

스마트폰이 갑자기 등장합니다. 덩달아 와이파이라는 것도 생겼지요. 그전에는 데이터가 다 돈이었는데, 이제는 좀 더 저렴하게 빠른 인터넷을 직접 활용할 수 있는 내 손안의 작은 컴퓨터가 생겼습니다. 덩달아, 듣기 힘들었던 일본 쪽 락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애플 뮤직을 구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커뮤니티를 통한 음악 정보 수집 생활에서 벗어나 애플 뮤직의 알고리즘이 만들어내는 아티스트 소개를 받고 음악 정보를 늘려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제안하는 알고리즘으로 인해 이제는 어떤 아티스트를 좀 더 안다고 으스댈 수 없게 됐죠. 특히, 초기에는 저장 용량이 많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저장 용량이 늘어남에 따라서, 엠피쓰리 플레이어를 따로 들고다닐 필요가 없게 됐습니다. 들고 다니는 전자기기가 하나 줄어든 것은 굉장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초기에는 허전하긴 했는 데, 지금은 엠피쓰리 플레이어를 썼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네요.

 

3. 현재 음감 생활을 위한 하드웨어와 사용하는 스트리밍 서비스

매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앰프+빈티지 스피커 조합을 심심찮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굉장히 비쌉니다. 하지만 저는 장모님 찬스로....스피커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어요. 그리고 중고 풀릴 때, 뛰쳐나가면서 서서히 업글+옆글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신문물(?) DAC와 블루투스 모듈을 통해, 스트리밍 서비스를 앰프+패시브 스피커 시스템으로 동작하게 됐습니다. 지금 시대가 되서야, 신문물과 과거 앰프 스피커 간의 화해가 가능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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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스트리밍 시대라지만 위대한 음악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과거에서부터 발굴되어야 할 음악들도 여전히 가득차 있고, 음악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게 만들어짐에 따라서 이러한 발굴+재조명 작업들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튜브를 통한 다각도의 음악 감상(?)을 할 수 있습니다. 아이돌의 음악을 다각도로 촬영해낸 영상물들이 가득하거든요. 실로 음악듣기, 보기 좋은 시대가 된 거 같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음악을 듣기에는 조금 힘든 시대가 된 거 같기도 합니다. 유튜브나 스트리밍 서비스의 알고리즘은 소속사 관련 아티스트들만 뜨니까요. 그래도 위안을 삼자면, 비평+리뷰하는 채널이 많이 있으며 그들의 어떠한 계보를 소개해주는 것만으로 이런 문제도 점차 해결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