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궁했을 시절, 좋아하는 저자의 책을 들여올 때 그의 '주요 저작'만을 구매해왔습니다. 김영민 선생님의 대표작인 동무 3부작, 인간의 글쓰기, 집중과 영혼 시리즈처럼 화두가 명확하고 집중도가 있는 책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지요. 일종의 자본의 한계 내에 최선의 선택을 한 '실용주의적' 접근이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근데 어찌하다보니 김영민 선생님의 절판된 책까지는 구하지는 못했지만, 아직 시중에 존재하는 도서를 다 갖춰버렸습니다.
에세이 혹은 단상집을 우습게 생각했습니다. 골격이 있는 책, 어떤 그림이 명확한 책만이 전부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단상집은요, 그런 자세로 접근하면 안됩니다. 가벼운 글, 무게감있는 글들이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거든요. 편집자의 역량이든, 작가의 역량이든 서로의 상호 작용에 의해 책이 나옵니다. 여러 번 읽었을 때, 굉장히 리듬감 있는 책 구성이라고 판단이 됐습니다. 집중력이 필요한 글이 조금 지나면, 가벼워지고 하는 구성입니다. '균형감'있게 구성이 된 것이죠.
무엇보다도 이런 장르의 책은 사상가의 사상의 궤적이 전환되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굉장히 다이내믹한 순간을 목격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전의 작품들의 궤적과 견주어서 볼 때, 폭넓게 글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일종의 덕질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겁니다. 동의어이니까요. 결국 덕질만이 세상을 구원할 것입니다. 이 책의 직전 작품이 <집중과 영혼>이라는 대작이었는 데, <집중과 영혼>의 보론 형식의 글도 있고, 더 발전된 형태의 글도 톺아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톺아보는 과정에서 제 생각의 결이 저자의 결에 '접붙임'이 발생합니다. 또한 생각의 접붙임 과정에서 독자 스스로의 화두를 발견하는 기회이자, 화두를 '문장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어렴풋한 아무 생각이 '화두'라는 근원으로 나아가는 것이죠. 이 화두는 더 나아가, 인생 전반의 탐구 주제와도 맞물리게 됩니다. 생각을 환기시키고, 개똥철학에서 단단한 사유의 힘으로 나아가는 역사적 순간이 되기도 합니다. 김영민 선생님 책은 그런 힘이 있지요.
단상집은 편하게 감각할 수 있는 책으로서 다가옵니다만, 때로는 편한 형식이라는 안정감을 박살내는 창조적인 파괴 사건이 발생합니다. 무엇보다 어휘력(?), 언어 감각을 차분히 넓혀나갈 수 있기도 하지요. 문장 구사력이 좋고, 단단한 자기 철학이 있는 분들의 글은, 독자의 문장력을 키워줍니다. 책 하나갖다가 다 되는 듯 말씀드렸습니다만, 저자의 출간 이력과 작품별 특징을 아는 이들만이 느끼는 특수한 체험입니다. 책을 여러 권, 엮어 읽었기에 각 작품별 있는 파편적 의미가 통합되어 일어나는 폭발력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즉, 좋은 글은 몸을 변화시킨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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