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하고 있는 말에 위화감을 느끼지만 그래도 위화감이 있는 자기 말에 책임을 질 줄 아는 것이 '어른'입니다. 반면, 어떻게 해도 '진정한 마음'을 말로 표현하지 못해 무엇을 말해도, 무엇을 해도 '이런 건 나답지 않다'는 답답함만 남고, 그 때문에 자신이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질 수가 없어서 했던 말을 철회하고, 말끝을 흐리는 이런 모습이 '젊음'의 특징입니다. ...사춘기 아이들이란 에고이스트가 되고 싶어도 애초에 자신의 에고가 어떤 것인지 그것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잘 모르는 나약한 존재니까요. 할 수만 있다면 '단언'하고 싶지만 무엇을 '단언'해야 할지 잘 모르는, 가능하면 남의 눈 따위는 신경 안 쓰고 방약무인하게 행동하고 싶지만 남의 시선이 신경 쓰여 미칠 것 같은 이런 것이 젊음인 거죠. (112)
...요즘 아이들에게 '주저함', '더듬거림', '막힘' 같은, 언어기능의 문제가 거의 안 보입니다. 아주 매끄럽게 말이 흘러나와요. ...학창 시절을 떠올려봤을 때, 말이 매끄럽게 나왔었나요? ...왜냐하면 사춘기 소년소녀일 때는 본래 '말이 잘 안 나오는 법'이니까요. 사춘기의 특징은 '샤이'하다는 것입니다. 사춘기 때는 대체로 그렇게 이기적이지도 않고, 무작정 자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돌진하지도 않고, '어떻게 해서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해내고 싶다'고 주장하지도 않죠. 그렇게 분명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솔직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자신도 잘 모르니까요. 자기감정을 말로 잘 표현할 수 없고, 욕망의 윤곽도 잘 파악하지 못하겠고, 자기 신체 하나도 어떻게 움직이면 좋은지 잘 모르겠는, 그래서 '몸 둘 바를 모르는' 상태, 말도 잘 못하고, 몸놀림도 어색한... 이런 것이 사춘기 때 느끼던 보통 감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해도 '입 밖으로 나온 말'과 그 말을 한 '마음' 사이에 항상 어긋남이 있고, 말이 너무 많거나 모자라거나 해서 늘 자신이 말한 내용에 스스로 위화감을 느끼고, 자신이 한 말이 자신에게 적대적인 것 같은 소외감조차 들고, 거울에 비친 자신을 봐도 "이게 누구지?" 싶게 거리감이 느껴지고, 그 모습이 자기 자신이라고 인정할 수가 없는 그런 감각들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솔직히 이것을 하고 싶어요"라든가,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같은 이야기가 매끄럽게 말이 되어 나올 리가 없는 겁니다. '말하고 싶지만, 말로 못 하는' 것이 사춘기 언어활동의 '보통'이니까요. 자신의 마음을 전하려고 해도 주저하거나 말이 막히거나 더듬거나 해서 어쩐지 매끄럽게 말이 안 나오는 거죠.(110)
이는 일본 상황에서 쓰여진 책입니다만, 우리나라도 크게 다른 거 같지 않습니다. 되려 더 심한 거 같습니다. 오죽 하면, 유튜브에서도 대학을 졸업한지 한참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현직 대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수능'을 잘 보는, 더 좋은 대학 가는 법을 컨텐츠로 밀고가는 유튜버에 열광하고,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도 출신 대학에 대한 아쉬움이 드는 것을 보면, 우리의 정신적 나이는 19-20살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고 싶은 것보다는, 더 좋은 점수, 어떤 대학에 소속되는 것이 중요한 사회, 대한민국입니다.
실제로 무엇을 하기 위해서는, 관련 학과 선택보다는 '더 나은' 대학이 취업하는 데 유리한 건 아무래도 자주 목격되는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텔레비전에서, 언론 매체에서 추천한 것들을 먼저 우선하는 것을 볼 때, 스스로 갖고 있는 리듬과, 웅얼거림의 기회를 손쉽게 날리는 게 아닐까요? 그만치 다양한 활동과, 다양한 만남이 없었기에 그런 매체에서 알려준 '더 나은 것'에서 머물려 하는 거 같습니다.
웅얼거림의 순간, 샤이한 순간, 얼버무리고, 내 자신에게 거리감을 느끼면서 몸 둘 바를 모르는 어색함은 자연스럽습니다. 자신만의 리듬을 관찰하고, 성찰해봅시다. 저 역시, 말 잘하는, 얼버무리지 않는 동년배들에게 놀림을 받았던 시기를 보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부러워했던 시기를 보냈었지요. 그럴 때마다 어떻게 리듬을 찾고, 표현할 말을 웅얼거리는 것부터 차분히 견뎌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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