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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一理-읽기/일상 그리고 패턴

꼭 거쳐야 할 '수줍음' / 우치다 다쓰루 <소통하는 신체> 5

by 一理ROASTERS 2023. 6. 13.

아이들의 언어표현이 위기 상황에 와 있습니다. 어떤 기사에서 "귀찮아", "짜증나", "닥쳐", "꺼져" 같은 공격적이고 잘라버리는 듯한 말투가 어린이들의 자기표현 언어에 깊이 침투해 있다고 합니다. ...이런 말을 쓰는 상황과 입장도 다르고, 아마 그 아이 자신이 느끼고 있는 답답함이나 분노, 불안감의 양상도 모두 다를 텐데 그것이 언어적으로 다르게 표현되지 않고 이러한 말들이 반복된다는 것은 어떤 위기의 징조가 아닐까요? ...기대에서 불안으로, 절망에서 분노로, 이 정도의 아주 간단한 정서적 변화조차 요즘 아이들은 표현할 수 없게 된 걸까요? (108)
...아이들은 내면과 자신의 말이나 신체, 몸놀림 사이에 어긋남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긋남'을 어떻게든 조정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느릿느릿 구축해가는 그 힘든 과정을 참지 못해 기존의 정형화된 틀에 자신을 집어넣는 것으로 정신적 안정을 얻으려고 한 거죠. ...그들은 결국 그렇게 기존의 틀에 들어감으로써, 아무도 추체험할 수 없고 대체할 수 없는, 저마다 고유한 '내면과 외면의 어긋남'을 조정하는 힘든 일에더 도망쳐버리는 겁니다. 그렇기 기존의 '불량 청소년 타입'에 쑥 들어가는 것으로 스스로 '나다움'을 달성했다는 행복한 환상 속에 안주하게 됩니다. 다르게 말하면, 사춘기의 개성을 '똥값'에 팔아먹음으로써 자아 정체성에 대한 일종의 안정감을 사는 것입니다. (119)
그런데 실은 이것이 사회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처럼 사춘기를 '퇴행' 옵션으로 그냥 넘어가버린 사람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다시는 '주저하거나 수줍어'할 수도 '복잡'해질 수도 없기 떄문입니다. '청산유수처럼 말하는' 능력은 후천적으로 언제든지 학습할 수 있습니다.(영업사원들의 세일즈식 말투는 일주일이면 익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듬고' '막히고' '주조하는' 사춘기 특유의 언어 운용 회로는 한번 망가지면 다시 살릴 수가 없습니다. '수줍음'같은 것은 한번 잃어버리면 다시는 얻을 수 없스빈다. 하지만 그것의 중요성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심리적으로 사춘기를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면은 유아입니다. 사춘기를 정면으로 맞닥뜨리지 않고, '말을 더듬는' 귀한 시기를 '정형화된 타입'을 연기하는 것으로 통과해버린 사람은 그 후에 사회생활을 하든 결혼을 하든 본질적으로 유아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겉모습은 '어른'인데 속은 '유아'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아무 문제없이 사춘기를 통과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120)

어른이들이 가득한, 아니 몸만 큰 어린이들의 세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성인이 되서도 그러할진데, 사춘기 때에는 수줍음과 어영부영, 우물쭈물하는 것은 '멍청하고', '아둔한 것'으로 취급했었지요. 학교는 학생들을 '웅얼거릴 틈'과, '우물쭈물할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런 부분은 공교육의 한계이자, 본분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됐습니다. 학교는 '웅얼거림'과 '우물쭈물하는 것'을 교정하는 곳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까요. 교사들은 그걸 위해 있는 거구요.

뿐만 아니라, 동년배들도 '청산유수의 말주변'을 가진 이들에게 더 달라붙기 마련이지요. 그당시에는 부러웠고 동경했고, 그들을 따라하려고 애썼지만 도저히 잘 안되더라구요. 지금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는 모릅니다. 그때부터 친해질 자격(?)도 얻지 못했고, 그렇기에 연락하지도 않으니까요. 남자들만 있는 남고이든, 남녀 공학이든 격투를 잘하는 사람보다는, 달변가가 인기를 끄는 것은 학창시절 뿐 아니라, 군대에서도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달변가라 하더라도, 눌변이었던 이들은 영원히 '눌변'으로 기억되기 마련이지요. 결국 사람은 멈추지 않고 성장하는 존재라는 것을 모른채로 말이죠. 사실 대다수의 눌변들은 아웃사이더 감성을 가지고, 이십대 들어서도 아웃사이더가 되는 경우는 흔합니다. 대다수의 성향은 어떤 극적인 '사건'을 겪지 않고서야, 혹은 좋은 인연을 만나지 않으면 그 상태 그대로 성인이 되어버리곤 합니다. 모두가 성장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일 뿐이죠. 사실 그렇지 않은데 말이죠.

성장은 어쩔 수없이 가혹한 분석입니다만, '자기의 몫'입니다. 달변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지만, 웅얼거림을 보완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그런 웅얼거림을 보조해줄 수 있는 좋은 인연이 필요한데, 자기 세계 속에만 머물러 있으면 그런 좋은 인연은 찾아오지도 않습니다. 좋아 보이는 것들을 찾아서 하는 것부터 시작입니다. 그리고 '끌리는 것들'에 솔직해봅시다. 여전히 눌변에 가깝지만, 하고 싶은 것들을 놓치지 않았던, 좋은 인연들을 놓치지 않았던 작은 경험의 기록입니다. 짧은 경험의 단초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탈하되 안온하고, 직감과 직관에 솔직하게 대면하길 바라며, 일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