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5 비평은 문학적이며, 표현적으로 재구성할 것 / 김영민 <산책과 자본주의> 3 이 책은 2007년에 나온 책입니다. 하지만, 이때의 문제의식이 2022년의 와 여전히 그 뜻을 잃지 않고, 돌파합니다. 공부함의 기본, 무엇보다 해석에서 더 나아간 '비평'은 곧 잘 가꾸어지고 솎아지고, 비로소 소소한 삶의 내려앉은 '몸'입니다. 바로 아래 문단에, 뜻과 글의 사잇길이라는 아슬아슬함을 캐치하고 더 나아간 길을 제시하십니다. 그러니, 일독을 권합니다. 문화비평은 문학적이며, 문학적이어야 한다. ...인문학을 표현적으로 재구성하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문화비평의 '비평적' 글쓰기가 그 자신의 신체를 '문화적'으로 재구성하는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이 굳이 '문화' 비평일 필요가 없다. ...이는 단지 가독성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낮은 자리 속에 정박하려는 미래 인문학적 체질변화와 .. 2023. 5. 7. 삶은 응하기 / 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7 우리의 주된 삶의 방식, 무엇보다도 살아가는 삶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응하기'입니다. 이웃들 혹은 타인들과의 온/오프라인의 버성김 속에 놓여서 살기 때문이지요. 심지어 혼자 있는 동안에도, 유튜브에 속한 타자와 버성깁니다. '홀로' 역시, '타인'의 해설이 있어야, '홀로'가 비로소 '고독'으로 의미화합니다. 그렇기에 가장 익숙하지만, 결국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보면, 타자에게 버성김을 뚫고 응하기는 어렵고도 어렵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응하기'는 그야말로 전부다. ...우주와 그 생명의 역사는 죄다 장구한 응하기의 과정이다. 응하기를 통해 그 실효를 얻는다는 것은, 곧 삶의 자리가 늘/이미 타자의 세속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愼獨마저도 (어떤) 타자(들)와의 대화다. 생각이 공부가 아니.. 2023. 5. 7. 비평이라는 가능성 / 김영민 <산책과 자본주의> 2 마냥 에세이집이라고 알고 있던 김영민 선생님의 책의 서문을 보게 됩니다. 선생님께서 설명하는 비평의 의미를 같이 숙독해봅시다. 이게 제 할 말의 전부입니다. 이 매장의 존재이유이구요. ...문화비평은 일상의 낮은 자리로 스며든다. 그런 점에서 비평은 그 자체로 공부다. 공부가 아닌 비평은 부레처럼 뜨기 떄문이다. 습작이라는 기나 긴 발효의 시간, 그리고 그 발효가 마침내 내열을 숨기고 차분해졌을 때에 스타일이 생긴다는 고호의 말처럼, 이론의 열정을 묵히고 그 모서리들이 숙진 다음에 우리는 비평가의 눈으로 문화를 얘기할 수완과 지혜를 얻는다. ...문화비평은 일상의 정치성에 주목한다. 바로 거기에, 일상을 다루되 문학과 갈라지는 지평이 생긴다. 일상이 어떤 삶의 양식이라는 채널을 통해 진지화할지, 혹은 영.. 2023. 5. 3. 지혜라는 미래 / 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5 지혜는 솟아나는 '영감'의 발현과 비슷한 어감입니다. '솟아난다'는 표현에서 지혜의 이미지가 드러납니다. 무엇보다 여러 영상 매체에서 드러난 지혜의 모습은 '위태'롭지만, 국면을 전환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전쟁 영화에서 이런 지혜라는 이미지를 엿볼 수 있어요. 또한 현실과 타협하는 전략인 동시에, 불법과 합법 사이를 절묘하게 오가는 현대 드라마에서도 나타납니다. 무엇보다 성서에서 '솔로몬의 재판'에서 지혜의 모습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지혜는 무맥락적-무매개적 지식으로부터 '외출', 삶 속에 들어가는 비평적 실천과 함께 솟아나거나 쟁여진다.(그러나 결국 관건은 외출 그 자체가 아니라 외출한 이후에 다시 자신의 집으로 귀가할 수 있는가, 하는 데 있다.) 이미 지적했지만, 실천의 지평에서 동.. 2023. 5. 3. 비평의 정확한 정의 / 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4 이론을 공부한다는 것을 이유로, 우월해진 게 아니다. 이는 자기 위로일 뿐. 이렇듯 그전에 이론을 공부하고 관련 서적을 수집했던 이유는 허영(?)이었다. 스스로 좀 더 우월하다는 자만심에 취하기 위해 공부했었다. 이는 분명 잘못된 방향이었던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김영민 선생님은 공부의 길을 제시해주신 분이시다. 무엇보다 여느 인문강사들과는 달리, 남의 이야기인양 치부하는 비판적 어투가 아닌 '비평의 숲'을 제시하신다.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문제시하는 데에서, 비평의 궁극적 묘가 있다고. 이론은, 특히 인문사회과학의 이론은 비평이 된다. 아니, 오직 비평이 됨으로써만 그 이론은 자신의 존재증명에 나설 수 있다.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비평의 진정한 대상은 타인이 아니다. 몸을 끄-을-고 타자(성)를 향해 .. 2023. 5. 2.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