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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一理-읽기/일상 그리고 패턴

상인의 뜻, 조심스런 '우회迂廻'

by 一理ROASTERS 2022. 10. 7.

기어이 돈을 벌려고 하더라도, 손님과 함께 죽겠다는 마음이 그 첫 단서이니,
상인의 뜻은 손님을 살피고 그 사정에 응해서
필경 자신의 이익을 구하려는 조심스런 우회(迂廻)이기 때문이다.
...
장사를 하자면
...
적어도 3개월간 인간이란 무엇인가, 환대란 어떤 일인가, 그리고 장사의 이치 등에 관해서 야무지게 배우라.
그러면 망하더라도 흥하더라도 그 마음에 이 시대의 잡념은 없을 것.
(김영민,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286)

저는 자영업자입니다. 직장인의 과정을 거쳐, 상인이 된 것이지요. 만들기 전부터 반년동안 다양한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카페를 이미지와 공간으로 접하면서, 어떻게 벤치마킹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봤습니다. 지기들의 의견들도 필사적으로 들었구요. 뚝심있게 많은 것들을 무시하긴 했지만, 그 지기들의 충고가 지금 빛이 납니다. 무엇보다 제가 가진 강점(경영학에서 접근하는 방법론)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해보면서, 그 접점을 만들고 비로소 매장을 오픈하게 됐습니다. 

 

매장의 모토는 좀 더 심도있는 '대화'와 '응대', 조심스런 '개입'의 장을 추구하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말言'을 주고받는, '말言'의 조화가 이뤄지는 '말言'들의 복잡한 '일리一理'들이 살아 숨쉬는 역동의 장을 추구했지요. 어색하고 어설프기만 하지만, 제 응대 방식에 대해서는 장사를 시작하고 나서야 찬찬히 그 기틀을 만들어 갔습니다. 지금도 만들어나가는 중이지만요. 무엇보다 맛있는 커피도 커피지만, '다도'를 스스로 체현하는 훈련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좋은 응대, 좋은 환대를 고민하는.

 

매장은 일단 많이 팔아야 합니다. 그래야 매장은 유지됩니다. 그러기 위한 마케팅 전략 수업이 많이 열려 있습니다. 일단 하나도 듣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대학 전공이 문과(경영대도 문과다...)라서 나름 고고함을 유지했습니다만, 현실은 생각보다 혹독하더군요. 다른 시점으로 보면, 자진해서 선택한 고립이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응대의 공간이지만, '카페'라는 형태로 사업을 시작했으면 '카페'의 트렌드를 응당 살폈어야 했습니다. 역시나 그 트렌드에 밝지 못해서, 약간은 도태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이곳의 유니크함을 좋아하시는 분들을 마주할 때면 그래도 안심이 됩니다.

 

이래저래 3년이 넘도록 매장은 살아 남았습니다. 초기 계획에 비해 공간도 물리적으로 많이 변화했고, 사람에 대해 많이 배웠고, 많은 사람들이 거쳐간 이곳은 저를 바꾸었지요. 뿐만 아니라 응대 방식도 메뉴도 공간의 방식도 많이 변했습니다. 무엇보다, 매장의 기틀을 잡아준 좋은 스승의 역할이 제일 컸습니다. 여전히 변함없이 좋은 말言/글文이 사람을 단단하게 그리고 온화하게 만듭니다. 곧 있으면 5년차, 4주년을 맞는 '일리一理'입니다. 사람을 배워가는 공간,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는 공간보다는 맛있는 커피만큼의 응대의 공간, 고독을 존중하는 공간, 좋은 선생들의 책이 가득한 공간을 꾸준히 만들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