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란? "정도나 경지가 점점 깊어짐. 또는 깊어지게 함"이라는 뜻입니다. 중고등학생 시절에 흔히 듣던 '심화 학습'라는 말에 이미 깊이라는 차원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돌아보니 깊이라기보다는 '꼬임 정도'의 문제겠지만요. '적절하거나 과도하게 꼬인 문제'을 '빠른 속도'로 풀어내는 것이 그 당시의 급선무였던 거 같습니다. 그렇기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살피기 보다는, 빠른 처리 속도에 익숙해지다 보니, 대학이라는 관문에서 '하고 싶은 것'과 '점수의 적정선' 안에서 선택아닌 선택을 하지요. 거기서부터 깊이에 대한 기피가 시작되고,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서도 그 습성은 지워지지 않지요. 책을 읽는 사람은 계속 책을, 안 읽는 사람은 계속 안 읽는 삶을 삽니다.
이렇듯 대다수의 사람들이 '초등-중등-고등'에 이어지는 과정을 대다수가 통과하며, '대학'이라는 관문마저 통과합니다. 그 시기에는 끝이 보이지 않지만, 그 모든 과정을 지난 지금에는 '빠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격세지감보다는 나이만 먹는 느낌입니다. 깊이보다는 '편함'과 '쉼'을 중시하는, 더 나아가 '편함'과 '쉼'이 화려해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되려, 자영업에서 그런 분위기와 맞물려 '편함', '쉼'과 더불어 '화려함'과 '쾌적함'으로 나아가고 있지요. 최근 자영업의 트렌드가 그러합니다. 영상 매체도 마찬가지지요. 극 속에서 다양한 등장 인물들의 갈등이 첨예화되는 과정을 목격할 근성이사라지고, 편히 볼 수 있는 '일상'을 절묘히 다룬 '쇼츠'라는 장르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대가 빨리 변하되 발전한다는 느낌보다는, 되려 시대가 악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상 매체가 이제는 손 안에, 내 입맛에 맞는 피드가 뜨는 시대, 그렇게 편하게 살고 있다가 오히려 댓글을 보면 끔찍합니다. 성숙을 이루지 못하고, 저 역시도 맞춤법을 종종 틀리긴 합니다만, 상상 이상으로 맞춤법에 맞지 않는 문장과 더불어 증오와 거짓 정보의 댓글이 넘쳐 납니다. 직접 정보를 습득하기 보단, 남의 정보를 흘려 듣는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에 '깊이'는 기피로 이어집니다.
최근에 어떤 정치인이 습격을 당했습니다. '잘 됐고, 인과응보, 쌤통'이라는 표현이 베스트 댓글로 달립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폭력은 나쁘다는 댓글이 있지만, 그리고 과거에도 분명 그런 사람들이 많았겠고, 처벌이 없던 시절이다보니 막 나갔다 치더라도, 이제는 '처벌'이 가능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저런 댓글에 호응하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다른 세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치-종교라는 '자발적 선택'의 가능성이 아닌 '태초부터 정해진 것'이라는 생각으로 변해갑니다. 그만큼 대화가 아닌 각자 혼잣말을 하는 느낌입니다. 인터넷 게시판과 세상은 다르다지만, 인터넷 게시판에서의 문체와 내용이, 사실 진짜 얼굴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사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배움도 배움이지만, '불합리'함과 누군가의 '날조'를 통한 상처를 통해, 사회 생활을 감당합니다. (많은 분들이 '날조'에 대응하지 못해, 정신병을 얻기도 한답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정신과 진료에도 '건강 보험'이 적용되어 좋은 환경이 되어가고 있기도 하지요. 즉,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험난한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다친 몸을 이끌고, 직장이라는 전쟁터를 지나, 겨우 집으로 와서 우리는 깊이를 기피합니다. 여전히 깊이를 기피하는 생활에 있어서, 의문이 남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대학'에서 적어도 2년 이상 대학의 시스템에 적응해 수료증과 졸업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그간 고생하며 배운 '심화된 지식'은 어디로 증발했을까요? 중고등학생 때부터 독서의 중요성을 귀가 닳도록 듣던 그때의 경각심은 어디로 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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