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중입니다. 매체는 개인 각각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끔씩 아니 자주 매체가 대중을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받고는 합니다. 마치, 이 프로그램을 보기만 하면 당신은 특별한, 아니 적어도 일부 몰지각한 사람은 아니라는 자신감 아닌 자신감을 심어주고는 합니다. 스스로 특별하게 여기지만, "나만큼은 다른 이와 달라"라는 말에서 이미 다른 이와 차어없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여기의 매체의 무서움이 담겨 있는 거 같습니다. 다른 의미로 언론의 제대로된 보도가 이뤄질 수 없는 이유 중에 핵심 요인은 바로 '상투성'입니다.
갖은 대중매체를 접하는 소식들은 대체로 상투적인 틀과 표현 속에 묶여 있다. ...공급과 수요의 포맷이 대중적일 수밖에 없는, 어디까지나 '대중'-매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스의 무의미함과 일회성과 우연성에 의미를 주기 위해 이론가들에게 구원 요청을 할" 때조차 대중매체의 입들은 상투적이다.(26)
상투어의 전형은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라는 말버릇 속에 그 알짬을 숨겨 놓고 있다. 몰지각한 사람은 그저 우리 사회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그 자체로 상투적이라는 것만은 아니다. 이러한 판단이 수많은 사회적 발언을 상투화시키는 전제로서 깔려 있다는 뜻이다. 이런 뜻에서 상투화는 기성 체제와 질서를 수호하려는 보수적 움직임의 외투가 되기 쉽다.(27)
그리고 기후와 풍토라는 총체적 여건이 바뀌지 않느 한 스스로 외투를 벗긴 어렵다. 실은 버릇이 된 틀은 바로 그 틀이 감춘 속살에 대한 두려움과 내통한다. ...대중과 대중매체의 호기심이 오락가락하는 곳도 부담스러운 진실이 숨은 곳은 아니다. 그 진실의 외곽을 습관처럼 때리면서 그 진실을 더 공고하게 숨기는 짓이 곧 상투화이다. (27)
...대중매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거나 입신하고, 이를 통해 규제, 규정당하며, 또한 대중매체를 통해 특권적 지식인층에 성공적으로 반란해온 대중은 자신들만은 결코 '일부 몰지각한 이들'이 아니라는 오인을 시대의 양심이자 세속의 종교처럼 붙안고 있다. ...이러한 상식은 소비사회의 대중이 신봉하는 마지막 윤리이자 형이상학이다.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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