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재는 (상호) 개입을 매개로 그 전체성에 열려 있다. 다시, 개입은 존재의 방식이며, 이런 뜻에서 인문학이란 인간 존재의 전체성에서 개방되어 있는 개입의 가능성들을 찾고 드러내는 데 있다. ...개입은 인간의 존재방식이며, 세계는 이 상호 개입의 망으로 엮어진다. 면역반응이나 반사반응, 혹은 신진대사라는 생리의 기초를 이루는 상호 개입에서부터 인간의 정신이라는 진화의 특이점을 통해서 가능해진 각종의 텔레파시 현상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개입이 들고나는 그 전체성의 자리는 아직 충분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여기서 윤리가 태동하는 지점은 그 무엇보다도 개입의 행위를 매개로 이웃과 버슷하게 겹치는 곳이다. ...타자와의 개입은 언제 어디서나 어긋나기 떄문이다. 이른바 세속의 어긋남이다. 개입의 행위 속에서 어긋나고 버성기기에 윤리가 생기긴 하지만, 진정한 윤리의 씨앗은 개인의 의도와 선택보다 더 빠르게 뿌리를 내리고, 더 긴 시간 동안 자라고 있다. ...그리므로 개입의 윤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나도 모르게 이미/늘 개입하고 있는 지점과 그 방식을 깨단하는 일이다. 혹은, 개입의 무의식은 이를테면, 풍경에 의해 상처(기원)가 가려진 채 이데올로기적 주체들을 통상적 '삶의 형식'과 '인식의 형식'에 묶어둔 곳을 더듬는 일이기도 하다.
이는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와 이른바 자신 속의 맹점(혹은 타자)을 지시하거나 걷어내는 노력부터 시작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의 쟁점은 '그들은 그들이 하는 짓을 모르므로 용서하시라'가 아니라 '나는 내가 하는 짓을 이미/늘 모르기에 내 탓이다'는 데 있다. ...이는 '다 내 탓'이라는 종교주의적, 낭만적 슬로건이 아니다. 개입하고 어긋나며 버성기는 세속의 관계 속에서 그게 실질적이며 책임 있는 출구일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드는 세상은 윤리적으로, 혹은 정치사회적으로 책임소재가 분명한 개입들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세상은 나아지지 않고 우리는 좋아지지 않으며, 늘 그러했듯이 신생의 삶에 대한 전망 또한 여전한 습관과 제도 아래로 끝없이 미끄러진다. ...삶의 방식을 맨눈으로 닦달하려는 자기비평이며, 이 삶이 전방위적 개입을 통해 근원적으로 타자들과 어긋나고 버성기는 지점들을 버르집어 윤리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오직 스스로의 삶의 방식이 온갖 계기와 자리에서 주변을 오염시키는 분명한 증거를 향해 '간신히' 한 걸음씩 접근하려는 견결한 노력이다.(551~555)
게으른 근원적 질문은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떠오르겠습니다. 철학의 주된 관심사도, 늘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딱 잘라 '인간은 이것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게으름의 완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에 대해 다양한 탐구가 있어 왔습니다. '이것'이라는 정의가 오기까지 수많은 탐구와 고민의 결을 들여봐야 하겠지요. 김영민 선생님의 <동무론>에서는 이러한 인간에 대한 탐구의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동무론 초판과, 보론이 추가된 신판의 논의가 그래서 달라지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도 '개입'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텍스트에 적합한 사례는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댓글'만큼 소소한 파괴력을 주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유튜브는 거대한 '개입'의 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의 영상을 보는 것이 넓은 개입을 낳는 것(유튜버 수익, 알고리듬에 영향을 주는 것 등등)을 볼 수 있으니까요.
또한 어쩔 수 없이 개입을 '당하는' 경우는 허다합니다. 직장 문제, 정치 문제, 경제 문제 등등은 너무나 거대해서, 쉽사리 영향을 받습니다. 동시에, 나라는 개인 하나는 이들에게 '개입'합니다. 투표를 통해서든, 뉴스를 통해서든, 고분고분하는 자세에서도 이들에게 개입합니다. 이게 '이기는 방식'은 아닐지라도요. '결국 내 개입의 문제'라는 선생님의 접근법은 다소 뻔하게 보이지만, 선생님의 탐구 과정을 훑다보면 뻔하지 않은 접근법이 됩니다. 적어도, '책임'의 분명한 증거를 확보하는 첫 걸음은 '개입'을 자각하는 일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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