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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一理, 북-랩Book-Laboratory

책을 구매하는 기준이 바뀌다

by 一理ROASTERS 2021. 6. 27.

현재의 북랩 일리의 모습입니다. 가운데에 곧 긴 탁자가 들어옵니다. 대화하기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었거든요.

-부모님 집에 얹혀살 때, 책을 살 때, 제가 읽기 위한 책 위주로 샀습니다. 그리고 집이 그리 크지 않고, 책장도 그리 많지 않았기에 바닥 혹은 책상 위에 내동댕이쳐져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온전히 제것이기 때문에, 제가 찾을 수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죠. 그래서 특정 저자, 특정 주제 위주로 샀고, 어느 정도의 양에 도달하자 마자 책을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제 책 소비생활이 종료되는 거 같았죠.

 

-북랩 일리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같이 일하려던 친구들의 서재를 합하여 만드려고 했고, 책들간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큐레이션에 집중했습니다. 예를 들어, 들뢰즈-가타리-현대철학 등의 주제와 연관시켜 책장에 배치를 했고, 프로이트가 있으면 라캉을 라캉을 배치했으면 지젝을 배치해놓았습니다. 공간이 허용되는만큼 책장을 늘렸습니다. 기존에 제가 샀던 책들을 배치하는 동시에, 공간이 좀 많이 남았었어요. 어떻게 채울까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아무 책이나 채우면 안됐습니다. 

 

-제가 허세가 좀 있어서, 주로 철학자의 원전(물론 제 수준에서는 번역본)을 선정했고 그 이외의 책은 잘 사지 않았습니다만, 손님들을 위한 아니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손님이 좋아할 거 같으며, 제 취향에 맞는 '허들이 낮은' 책들이 눈에 드러왔습니다. 서점을 가는 의미가 달라지기 시작했지요. 기존에는 어떤 프로젝트 혹은 곰국(논문)주제의 책, 책 모임을 위한 목적이 이끄는 책들 위주로 구매했다면, 지금은 이 책 들여놓으면 사람들이 흥미를 갖겠구나, 더 나아가 다른 책들 간의 연계할 수 있는 디딤돌 같은 책이 되겠구나 싶은 책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김영민 선생님의 '서늘한 동무'에 영향을 받아, 감성적이기보다는 '이해'와 '합리'를 추구하는 책들 위주로 그동안 샀었습니다. 이건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문학 책이 적습니다. 문학 서적을 다루는 더 좋은 책방이 많습니다. 저는 그럴 역량이 되지 않구요. 그래서 이론서가 주를 이룹니다. 에세이보다는 어떤 학자의 연구들의 흐름을 담은 자서전도 최근에 들여놓기 시작했어요. 어떤 사람을 알고 나서,  그 사람의 작품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될테니까요.

 

-결혼하고 나서는 집에 책을 놓을 공간이 없는 거 같았습니다. 근데, 꾸역꾸역 책장을 설치하고, 꾸역꾸역 책을 채웠습니다. 제 바깥 분이 관심있어하는 책, 제가 집에서 읽기에 쾌적한 이론서(?) 등을 배치해 놓았어요. 꽉꽉 채웠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가정의 책과 매장의 책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간혹 중복되는 책들도 있습니다. 바깥 분께서도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책장을 무작정 많이 들여놓는 것도 좋지만, 가게를 운영하다보니 손님들의 동선도 고려하게 되며, 매장 바깥과 안의 풍경을 동시에 고려하기도 했지요. 바깥에서 볼 때, 일리는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줄까? 일리 안에서 바깥을 볼 때 사람들은 어떻게 다가올까 등을 고려했습니다. 책장 위치를 바꿔가면서,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어떤 한계가 있는지 가능한 실험은 다 했던 거 같습니다. 투잡이었을 때 안 보였던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은 상쾌한 북랩 일리를 조성하고 싶었지요. 책과도 잘 어우러지는 책장, 그리고 근본(?)이 되어줄 수 있는 탄탄한 뿌리의 책들.

 

-음악/커피/책/테이블/책장/바테이블 그리고 북랩 일리를 운영하는 아재 하나로 구성된 북랩 일리입니다. 제가 느낌이 와서 선택한 책들을 여러분들이 공명해주기를 바랍니다. 저도 여러분의 정보 체계에 공명하고 싶습니다. 서로 어우러져가는 서가를 구성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배워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