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리一理-읽기/함께 소소하게 비평 - 爲人之學

'학교는 말야'라는 말의 숨은 뜻 / 우치다 다쓰루 <어른이 된다는 것> 2

by 一理ROASTERS 2023. 5. 2.

예의 범절은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 착각했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된다. 나 역시도 무의식적으로 학교에다가 떠넘겨버린 것이다. 이런 게 상용화(?)되다 보니, 언론도 모든 문제를 학교 문제로 떠넘겨 버린다. 진보든 보수든 상관없이 학교는 늘 동네북이었다. 숨만 쉬면 다 교육탓이란다. 그러면 누구 탓일까? 수신제가修身齊家다. 나 자신, 내가 맡은 이들, 나와 이웃 간의 관계성의 문제이다. 그러니 가정에서 할 일을 타 기관에 떠넘기지 말 것!

'학교에서는 예절이나 도덕 등에 대해 단단히 가르쳐주었으면 한다'는 말에서 아이가 읽어내는 것은 말의 표면이 아니라 말 속에 있는 '그런 성가신 일은 학교가 해, 우리는 바쁘니까'라는 '자못 깔보는' 태도다. ... 하지만 그것을 가르칠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억지로 떠맡기려는 것이다. 여기에는 교육기관에 대한 경외도 신뢰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부모가 경외나 신뢰를 느끼지 않는 교육기관이 그 아이를 효과적으로 사회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32)
아이는 부모로부터 순식간에 교육기관에 대해 '깔보는' 사회적 태도를 배워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깔보는 태도'를 자신도 학교에 대해 반복하게 된다. 아이가 학교에 경의를 품지 않는 것은 부모가 하교에 경의를 품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들의 사회적 행동은 본질적으로 모두 연장자의 행동을 '모방'한 것이다. 그리고 모든 모방 행동이 그런 것처럼 모델의 '가장 나쁜 점'이 가장 흉내 내기 쉽고 과장되기 쉽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사회적 행동은 늘 어른들의 사회적 행동의 '추악한 희화'다.(33)
요즘 아이들에게 공통되는 '사회적 규범의 경시', '공공성에 대한 배려의 결여', '품위의 결여', '거의 자기 파괴적이기까지 한 이기주의' 등은 모두 지금 일본의 '엘리트' 층 안에서 그 원형을 볼 수 있다.(폭주족 소년들의 반사회성과 중앙 부처의 부패 사건의 반사회성은 동질적인 것이다.) (33)
아이를 바꾸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어른들이 바뀌면 된다. 우선 '내'가 바뀌는 것, 거기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사회 규범'을 중시하고 '공공성을 배려하고', '품위 있게 행동하고', '이기주의를 억제하는' 것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사회를 살기 좋게 하기 위한 비용'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