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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一理-읽기/일상 그리고 패턴

건축

by 一理ROASTERS 2021. 6. 26.

대학 입시 당시에는 건축학과가 꽤 셌다. 하지만 어느 시점 이후 갑자기 컷이 낮아졌다.(유명 건축과 빼고) 이미 개발이 다 되었기에, 새로 지을 수 있는 땅도 없는, 이미 개발이 끝났다는 징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재건축붐이 이는 것을 보고, 건축학과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그때 '건축학과를 갔어야 해'라는 후회감이 밀려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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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라는 것에 대한 내 안의 고정관념이 있다. 재산이 없는 내 자신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먼 이야기, 전셋집-월셋집을 오고가는 처지에 있어서, 사치스러운 이미지-혹은 내 자신의 경제적 열등감이 있었다는 방증이리라. 있는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 임차인으로 살아가는 내 자신에게 있어서는 생계 수단이자, 창조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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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된다. 유현준, 승효상, 르코르뷔제, 안도 다다오, 구마 겐고 등등 건축가들의 책을 보면, 이런 공간도 있구나 하며 환기가 된다. 기존에 사는 막막한 빌라를 생각해볼 때, 판타지스러운 연출, 이게 현실에서도 가능하구나. 여전히 독특한 공간에 대한, 내가 서식하고 있는 집에서 이런 이미지를 추구하고 싶은 욕망이 가득하다. 그들의 책은 이런 불만족과 뽐뿌질을 강화시켜주기도 한다. 근데, 그림의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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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랩 일리 근처에는 '재건축'이 활성화된다. 6개월 주기로 근처의 건물들이 하나씩 부숴지고, 하나씩 올라간다. 초기에는 엄청시끄러운데, 문명(?)이 발달해서 그런지 빠른 시간이 지나면 조용해진다.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다. 길이 막힌다. 지나다닐 수가 없다. 가게 앞에 무단주차도 발생한다. 손님들을 위한 주차공간인데, 출근하면 이상한 차가 가게 주차구역에 주차를 하고 있다. 늘 전화를 돌려 차를 빼달라고 이야기하는 게 일과 중의 하나였다. 건물 하나가 올라가면, 소음/주차/담배 냄새와 담배 꽁초가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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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지어지는 건물은 '양산형 건축물'이다. 원룸-투룸촌이 되어간다. 석촌역이 가깝고, 석촌역이 8-9호선 라인이 뚫려있다보니, 교통은 무적이다. 건축물 형태를 기준으로 바라보면 석촌호수의 송파동, 송리단길의 송파동과, 북랩 일리 근처의 송파동은 다른 송파동이다. 아직도 산업시대에 머무는 느낌, 혹은 시골같은 한적함, 적막함, 적막한 재건축의 소음, 답답한 담배갑형 원룸-투룸촌. 건물주에서 다양한 분양인들을 통한 '동' 관리 형태의 지배 구조의 변형도 눈에 띈다. 그중에는 건물주 중앙집권 시스템도 있지만.(극히 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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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위에서 다뤘던 건축학과의 흥과 망, 다시 흥하는 모습을 통해 사회의 모습을 읽는다. 특히 북랩 일리가 위치한 송파동의 간헐적(?) 재건축을 통해서 보듯, 오래된 건물들은 노후화됐기에 부숴져야 하는 것이다. 노후화된 건물은 산업시대에 주로 지어졌던 것, 그렇기에 새로 도래한 4차산업(?) 시대의 아이콘 '베드타운'(잠만 자는 세입자를 위한 집)의 등장이다. 후줄근한 동네에서 역세권의 '효율적인 동네'로 변하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 산업화 시기 때의 건물들이 없어지고, 시대에 발맞추어 21세기형 원룸-투룸촌으로 변해간다. 세월이 지나면서 부숴져야 할 건물들이 늘어나고, 새로운 상업적 가치를 가진 건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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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퇴근하게, 새벽부터 출군하고, 8시가 훌쩍 넘어서야 퇴근하는 그런 동네. 그리고 답답한 이 동네를 뛰쳐나가, 번화가로 놀러간다. 지쳐서 이 동네에서 잠을 청한다. 나는 이런 이웃들과 잘 어우러지고 싶다. 이런 동네에서 북랩이라는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저 존재하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현실을 직감하고 있다. 재건축이라는 사회 현상과 이곳에 퇴근하는 이들의 어깨를 보면, 이곳은 어떻게 존재해야하는지 고민은 깊어 간다. 좀 더 있고 싶은 동네를 만드는, 혹은 굳이 찾아와주는 이들을 위한 사려깊은 공간을 만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