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책은 수용의 순간에 독자의 손과 눈과 귀와 마음에서 생겨난다. 아트스트 북과 전자책이 경계를 밀어붙이는 것에서 우리는 용어의 유연성과 그 인터페이스의 다양한 범위를 볼 수 있다. ...독자는 알두스 마누티우스와 동료 학자들이 그랬듯 텍스트를 최대한 홀가분하게 읽고 싶어 한다. ...닫힌 인터페이스를 맞닥뜨린 우리에게 주체성이 생겨난다. ...책의 소비자는 한 번도 수동적인 적이 없었다. 우리와 우리가 읽는 텍스트 둘 다 몸이 있으며, 책이 형체를 얻는 것은 우리와 텍스트가 한 몸이 될 때뿐이다. 책이 독자에게 적응하는 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인쇄본 코덱스는 500년 넘도록 순탄한 삶을 살았다. ...이는 생각이 표지 사이에 매이거나 똑같은 방식으로 소유될 필요가 없는, 구술성과 일시성을 중시하는 문화로 우리가 복귀하고 있다는 뜻이다. 디지털 기기에서 읽기라는 행위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한 기술이 다른 기술을 대체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오히려 이 읽기 방식들이 공존하는 것에서 우리는 저자성, 소유, 보관, 학문, 여가에 대한 생각의 변화가 책에 대한 생각과 책에 거는 기대에 대한 변화를 여전히 일으킬 것임을 알 수 있다. 책이라는 용어가 애매모호한 것은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최대의 자산이다. 책은 우리가 생각과 만나는 말랑말랑한 구조다. 사물, 내용, 아이디어, 인터페이스 등 책은 우리를 바꾸고 우리는 책을 바꾼다. 한 글자 한 글자, 한 페이지 한 페이지씩.(273~275)
그동안 읽었던 '책에 관한 책'은 종이책과 전자책의 관계에 대한 논의에서 시작하고, '종이책' 예찬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또한 책을 정의하는 데 있어서 '사상'을 담는 그릇이라는 차원,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는 논의는 책을 '철학'과 관련되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 책의 위상은 독특하다. 역사적 차원의 책을 접근하는 데, 책이라는 범주를 '사물-책은 휴대용 기록-저작 수단이다' , '내용-책은 정신을 담는 투명한 그릇이다', '아이디어-책은 실험과 유희의 장이자 예술작품이다', '인터페이스-책은 수용의 순간에 독자의 손과 눈과 귀와 마음에서 생겨난다'라는 틀에서 책을 바라본다. 그래서 들여놓게 된 책이었다. 이 책은 편집이 꽤 정성스럽게 되어 있고, 책의 형태에 대해 고민한 이들의 어록들도 중간 중간 삽입되어 있다. 이런 구성은 책에 대한 질문을 심화시키는 장치다. 책을 읽어가는 데 현대 시대의 책은 과거의 책의 형태와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부터 비롯해, 현대의 책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파고들어가는 이들에게 한 번쯤 볼만한 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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